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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승연 Jan 17. 2020

내 방은 없어요

그래도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는 늘 '굴다리'였다.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윗동네와 아래 동네로 나뉘어 친구 집들이 흩어져있어서 거리상으로도 딱 중간이었다. 거기다 다리 밑으로는 차는 못 지나가고 사람들만 드나드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이 모이기에 안전하기도 하고, 적당히 은밀하기도 했다. 


굴다리 밑에서 모인 우리들은 누구누구네 집으로도 가고 놀이터로도 가고 또 어떤 날은 떡볶이 먹으러 분식집으로도 갔다. 굴다리는 우리들만의 집합장소이자 여기저기 떨어져 사는 나와 너를 잇는 동네의 연결다리였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도 주택에 사는 친구도 상가건물에 사는 친구도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굴다리가 있어서 친구들과 노는 데 있어 집이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친구를 만나려면 동네 어디가 아니라 oo아파트 몇 동 놀이터로 가야 하던지, oo학원에 같이 다니거나 해야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집 앞 편의점에 가보고 편의점 테이블에 주르륵 앉아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편의점 점원의 말로는 여기 주 고객이 혼자 사는 직장인도, 중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이란다. 여기야말로 진짜 아이들의 동네 아지트인 것 같아 좀 안타까웠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집을 고를 때도 동네 분위기나 학군을 따져서 또는 나처럼 아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많아서 워킹맘도 골라서 보낼 수 있는 동네를 고르고 골라 거주하기도 한다. 골라서 살긴 하지만 집은 더 이상 우리 가족들이 살고 싶은 이상적인 곳을 '선택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그 집에, 그 동네에 '선택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 여기가 내 방이야."

7살이 된 첫째는 방에 있는 이불이란 이불은 다 거실로 들고 와서 쫙 깔아놓고서는 거기에 인형도 두고, 책도 두고 자기 방이라고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그게 귀엽기도 하면서 동시에 측은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방이 2개인데 각각 침실과 서재로 쓰고 있다. 딸아이 말로 하면 엄마방, 아빠방이다. 그러면서 항상 자기 방은 왜 없냐고 물었다.  "나중에 이사 가면 네 방 만들어줄게."라며 애써 딸의 투정을 외면해왔다.


우리 착한 딸은 그래도 뭐가 좋은지 어떤 날은 화장실 앞 빈 곳이 자기 방이라고 했다가, 또 어떤 날은 거실 소파 옆 한 구석이 자기 방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이불을 깔고 잠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사가 확정되고 방이 3개인 집으로 가게 되면서 그런 딸아이에게 이제 진짜 네 방을 만들어 주겠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보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이사를 앞두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깨끗한 집, 햇볕이 잘 드는 집, 풍경이 들리고 새소리가 나는 집... 이런 집을 상상하다가 문득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공간이 있는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게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방 한 개는 아이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일수록 큰 장난감도 많고 움직임도 많아서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재택근무도 하는 남편 때문에 우리 집은 방 하나를 오롯이 남편의 서재로 만들었다. 말이 서재이지 컴퓨터와 책장으로 둘러싸인 매우 답답한 작업 공간이다. 하지만 남편은 거기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영화나 축구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가끔은 책도 읽는다. 퇴근하고 돌아와 곧장 자기 방에 들어가 있은 날은 왜 그렇게 얄밉던지. 집에 돌아오면 모두에게 개방된 거실에서 아이와 투닥거리를 해야 하는 내게 남편의 서재는 가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만 하는 방이라고 해도 어쨌든 남편은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셈이니까.


반드시 방이 아니더라도 집 어느 한 부분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둘 수 있다면 어떨까. 거실을 차지하는 큰 티브이와 푹신한 소파 대신 거실 한편에 나만을 위한, 내 체형을 고려한 가장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면. 거기서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쓸 수 있다면 꼭 내 방이 아니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떠올려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오래 살았던 아파트도 아니고, 가장 넓고 새집이던 곳도 아닌, 엄마 아빠 동생과 작은 방에서 부대끼며 잠시 살았던 단칸방이었다. 방이 좁다 보니 동생과 나는 서로 꼭 껴안고 잤는데 그때 동화를 각색해서 서로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서 역할놀이도 하고 아무튼 살면서 그때만큼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리고 방에서는 놀 수가 없으니 주택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기도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작은 집에 우리가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동생 방, 내 방은 없었지만 동생과 나의 공간은 그 집구석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는 행복했다.



언제 결혼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누군가 그랬다. 혼자서도 괜찮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을 때 하라고. 어쩌면 집이란 것도 결혼과 닮은꼴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집에는 한 집에 사는 구성원들이 따로 또 같이할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함께일 때 행복하지만 혼자일 때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할 곳에는 나도, 남편도, 우리 첫째와 둘째 모두 각자가 아끼는 나만의 아지트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게 집이라면 방구석 어딘가, 베란다나 화장실 어디 한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다면 그게 최고의 인테리어가 아닐까. 


새로운 동네에서 어릴 적 내가 놀던 굴다리는 이제 찾을 수 없겠지만 나와 우리 아이들만의 보물 같은 아지트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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