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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30. 2023

시간이 많았는데 없어졌습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이 절반뿐이 안 남았네’와 ‘물이 절반이나 남았네’


 흔히 긍정적인 사고를 말할 때 두 문장을 비교한다. 분명 둘 다 절대적으로 남은 결과물은 같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 마음과 태도는 달라지게 된다. 역시 좋은 교훈이고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것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 항상 좋은 것은 어려운 법이다.


 철없이 놀던 중고등학교 시절, PC방은 우리들의 재밌는 놀이터였다. 지금은 흔하기도 하고 규모도 엄청 크지만 그때는 생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규모도 작고 몇 군데 없기도 했다. 그래서 비싸기도 했고 돈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한 번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놀았다.


 중학교 때 어떤 친구의 생일날, 생일 파티를 하고 우린 정말 마음먹고 용돈을 모아 오랜 시간 PC방에서 놀기로 했다. 기억으로 4시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정말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전략을 세우고 준비까지 아주 여유롭게 한 게임, 한 게임을 즐겼다. 지금까지 이렇게 재밌는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우린 여유로웠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왜 게임은 몇 번을 해도 지겹지 않은 것일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점점 더 재밌어졌고 팀별 대결은 더 치열 해져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더 지나갔을 무렵, 슬슬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준비 시간은 아까웠고 바로바로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한 게임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서는 빠른 진행은 필수였다. 30분이 더 지나고 어느덧 우리가 넣어 놓았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우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이다. 더 전투적으로 게임에 임했고 그럴수록 왠지 목소리도 더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정말 영혼이 나에게서 빠져나와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4시간 전 여유롭던 나는 어디 가고 이렇게 성격이 급한 내가 다시 남았을까? 내가 참 한심해졌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고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형언할 수는 없었지만 4시간이 남았을 때와 30분이 남았을 때의 기분은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점차 흘러 그때 그 순간의 생각은 번번이 나에게 데자뷔 같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입대 날짜가 정해지고 처음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여유롭게 그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다 한 달, 일주일, 며칠 남지 않은 시간으로 줄어들수록 나는 초조해졌고 마음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그렇게 또 스트레스를 마음에 가득 채운 채 입대하게 되었다.


 여름휴가를 출발할 때는 정말 신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모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지만, 역시나 막바지에 이르면 일분일초가 아깝고 아쉬운 여름휴가가 된다.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출근 걱정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매번 동일한 패턴으로 나의 마음은 요동친다.


 충분했던 시간이 줄어들 때면 매번 중학교 때 PC방에서 30분이 남았을 때 유체이탈 같이 나 자신이 느껴졌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어 더 게임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3시간 30분 전의 내가 그렇게 부러웠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지나갈수록 긍정은 사라지고 부정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시간뿐만이 아니라 우린 풍요로웠을 때는 잘 모르다가 점차 그것이 바닥을 드러내면 왠지 아쉽고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통장에 잔고가 많을 때는 왠지 여유로운 기분이지만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줄어들수록 그것이 끝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또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입대까지의 시간은 번개같이 지나가버렸지만 입대하고 나서부터는 시간의 속도는 달팽이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그렇게 느리게 흘렀던 시간이 있었을까! 또 PC방에서 나와 다시 공부를 하러 갔을 때는 1분이 한 시간 같이 느껴졌다. 우리가 하기 싫은 것들은 또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가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점차 흥분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이지만 상황에 따라 체감 시간은 천지차이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든 물을 마셨을 때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겠지만 우리는 매번 다르게 느낀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긍정의 시간이 줄어들면 아쉽고 부정의 시간이 줄어들면 신이 난다. 자신의 마음을 긍정으로 채워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의 남은 삶도 좀 더 즐거운 삶이 되었으면 하면서 그때의 아이가 느꼈던 그 교훈을 실천하는 어른이가 되어야겠다.


물이 절반이나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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