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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20. 2023

도시 아이의 시골 살이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일 년에 두 번 꼭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방학! 학교에 가지 않고 매일 밖에서 뛰어놀고 싶은 마음은 그 시기를 지나는 많은 아이들의 꿈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기억에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되고 다음날, 아빠는 이른 새벽에 나를 데리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마치 여행을 가듯 그렇게 신나서 들떠 있었다. 방학에 놀러 가는 여행이라 그저 신나 있던 것 같다. 그렇게 장시간 버스를 타고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시골 할머니댁이었다. 나는 그때 여름 방학 내내 할머니댁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집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나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때 아빠는 내가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때는 어려서 그저 부모님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마냥 신나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생각했을 땐 왜 굳이 그렇게 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도 아니고 방학 내내, 말 안 듣는 초등학생이 그저 귀찮아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무얼 하고 시골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매일매일 신나게 뛰어놀았던 것은 확실하다. 공부는 했을 리 만무하다. 부모님도 없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신나게 놀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의 나는 그 시간이 무슨 도움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때의 아빠의 나이쯤이 되어보고 나니, 그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요즘 제주 한 달 살기나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이미 그때 시골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것이다. 특히 도시를 벗어나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많이 하는데, 자연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한 달 살기 조기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그저 한 달 내내 열심히 뛰어놀기 바빴고 힘들면 마을 정자에 누워 낮잠을 자고 그렇게 세상 걱정 없이 보낸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는 시골에 내 나이 또래 아이들이 몇 명 있어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게 되었다. 여름 방학 내내 나는 아이들과 방아깨비나 메뚜기, 여치 같은 곤충이나 청개구리 같은 것들을 잡으러 다니고 도랑에서 우렁을 잔뜩 잡아다가 삶아 먹기도 했다. 이 산으로 저 산으로 자연 학습을 다닌 것이다.


 물론 너무 어렸을 때라 엄마가 보고 싶어 몰래 눈물을 훔친 기억도 있지만, 부모님이 없더라도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독립적으로 혼자 하려고 하는 지금의 내 습관도 이때부터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할아버지를 따라 논과 밭을 돌아다녔다. 벼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자라며 잡초들을 구분하고 뽑아도 보았다. 질퍽한 논길을 따라 걸으며 진흙은 어느새 몸 여기저기에 묻었고, 밭으로 가서 열무도 뽑아보고 풋고추도 따보고 옥수수도 따다 쪄 먹었다. 


 작은 아빠댁에 있던 소나 돼지도 구경하고,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커다란 쇠파리라는 악랄한 놈과 소가 왜 그렇게 꼬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시골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던 경운기를 타던 그 시간이 너무 신나고 즐거웠다.


 그때는 그냥 신나기만 했고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었지만, 확실히 지금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다. 지금까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언제 그런 경험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지금은 돈을 내고 자연 체험도 하고 주말 농장도 하고 하지만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었다. ‘피’라는 잡초를 어떻게 생겼는지, 모내기부터 벼 베기까지 어찌하는 것인지, 우렁을 잡고 삶아서 모기를 뜯겨가며 이쑤시개로 발라내기보기도 했다. 닭 잡는 모습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며 품고있는 계란이 몇 개가 있는지 알게 되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께 많은 것을 배웠다. 페트병의 물은 어떻게 해야 빨리 뺄 수 있으며, 생명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호미질과 낫질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나무 손질하는 방법 등 별것 아니었지만 분명 그것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던 것들이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그 시절 나는 시골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다. 모두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것들,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로 터득한 것 말고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들, 특히 사고나 특별한 사건 같은 것들로부터 많이 배우게 된다. 지금은 쓸데없는 것 같지만 분명 나중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 다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이다. 하다못해 우리가 학창 시절 벌로 꽉꽉 채우던 깜지에서 기억나는 단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그 여름, 나는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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