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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17. 2023

엄마의 기억은 달랐다.

 요즘 본가에 가면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같이 살 때 보다 대화가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옛날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그때 너는 그랬지~, 그때 너는 참 이랬는데~ 등등의 나의 어릴 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내가 기억하는 일도 있고 정말 갓난아기 시절 이야기라 나도 모르는 이야기들도 있다.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왜 그렇게 들을 때마다 그 일들은 재미있는지 웃음이 난다. 어릴 때 일들을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그래서 옛날에 스마트폰은커녕 심지어 TV도 집집마다 없던 시절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것이 아닐까?


‘옛날 옛적에 말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말이야’


 그 시절 들었던 옛날이야기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일 수도 있지만 역시 대부분 허구가 보태어 만들어진 이야기들일 것이다. 과장된 부분도 없던 극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듯 재밌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펼쳐지며 흥미를 불러왔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기나긴 밤을 잘 보낼 수 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도 어딘가 과장되고 추가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간혹 예전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분명 엄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인과관계가 다른 경우도 있고 몇 가지 일들이 뒤섞여 있는 이야기도 있고 다른 사람과 나를 혼동해서 생기는 기억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살짝 바로잡으면 되는 기억들이지만, 간혹 서로 전혀 다른 감정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엄마는 그저 재밌는 사건 중 하나였다고 기억하거나, 그때 어떤 일을 못하게 되어 못내 아쉬운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그 일을 별 것 아니었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기억이라고 넋두리하며 그 기억을 바로잡아 보지만 매번 살짝 아쉬운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왠지 더 억울해지는 기분이랄까? 나이가 들어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억울하지 않기 위해 증거용 사진을 찍던 영상으로 찍어 남겨놓던가 해야 하나 보다.  


 물론 반대의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역시 관점의 차이로 발생하는 ‘기억의 오차’ 정도일 것이다. 분명 사건은 하나가 발생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사람이 두 명이었기에 감정도 두 가지로 발생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편한 대로, 엄마는 엄마가 편한 대로, 서로 그렇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다르기에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나는 결과에 주목했고 엄마는 원인에 집중했으니 결과는 어찌 되었든 관심이 없던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 서로 대화가 없었기에 서로의 의중을 모른 채 각자 다른 점에 집중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상이몽


 같이 행동하면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 인간은 서로 다르니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각자 편한 대로 생각하다 보면 오해가 쌓인다. 나와 엄마도 그랬던 것이다. 그래도 부모자식 사이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 특히 부부간에는 간혹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라는 말 그대로 연인이나 부부간에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도 서로 다르지만 보통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엄마와의 일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경험하며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인간의 망각 능력은 연인이나 부부 싸움에서 그 힘을 과시한다. 또다시 나 편한 대로 생각하게 된다.


 장기, 바둑, 체스 같은 게임을 해보면 내가 직접 할 때 보다 옆에서 훈수를 둘 때 더 수가 잘 보인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놀랍다. 옆에서 볼 때는 내가 이렇게 수를 잘 보다니! 하다가도 직접 해보면 아까 그놈은 어디 가고 이런 바보가 앉아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왜 다를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흑과 백, 한과 초를 동시에 바라보지만, 직접 들어가서 보면 나는 나 편한 대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알파고처럼 빠르게 엄청난 양을 계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린 인간이기에 그저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수만 계산했다. 하지만 같은 판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수만을 생각하기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 즐겁고 재밌는 경기를 위해 상대방을 먼저 바라봐 준다면 좀 더 아름다운 기억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때가 오면 말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서 문제일 수도 있다.


 서로가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감안했거나, 엄마와 그 당시에 기싸움을 하기보다 대화를 좀 더 했다면 기억이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소통이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그때의 사건들을 즐겁고 재밌는 추억으로 남겨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엄마와 더 많은 대화를 통해 다른 기억들을 풀어내야겠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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