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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10. 2023

어린시절 사소한 사건이
나를 바꿨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서 옛날 기억은 저 구석 어딘가에서 꺼내 와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어릴 때 찍은 사진들을 모아 놓은 사진첩을 오랜만에 꺼내어 보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도 몇몇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고를 당했다든가, 많이 아팠다든가, 생일에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나 학예회 때 춤을 췄던 기억 등등 몇 가지 기억들은 여전히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나도 5,6살 정도 교통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처음 눈을 뜬 광경이나 수술하고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고 싶었지만 옆에서 먹는 것만 지켜봐야 했던 그 기억과 같은 몇 가지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나의 인생도 바꿔 놓은 기억일 수도 있다. 


 그 기억은 대략 이렇다. 10살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아버지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앞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무언가 작은 물건을 놓쳐서 조수석 쪽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급하게 물건을 찾으셨는데 조수석에 있던 내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확인을 하기를 바라셨겠지만 어린 나는 그저 신나 있었다. 결국 나에게 앞으로 뒤로 말하던 아버지는 짜증이 나셨는지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왜 그렇게 애가 둔하냐’



 뭐 당시에는 누구든 부모님한테 많이 맞고 심한 이야기도 많이 들으며 자라던 시절이라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당시 아버지도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사실 저것보다 더 심한 말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기억은 다 안 나지만… 그런데 유독 저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아버지의 표정과 함께 떠오른다. 


 사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정말 멀리 하던 아이 었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성적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왜인지 ‘둔하냐’라는 말이 ‘멍청하냐’라는 소리로 들렸던 것 같다. 그 나이에도 자격지심이었을까. 내심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 말을 잊지 않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둔하지 않으려고, 다시는 그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운이 좋게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아지면서 공부에도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어릴 때 멀리했던 책도 많이 읽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20권도 읽었던 것 같다. 한때는 삼국지에 빠져서 1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끊임없이 생각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만약 안되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등등의 생각들을 계속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 전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먼저 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둔하냐’ = ‘멍청하냐’라는 소리를 듣기 싫은 그 생각. 정말 너무 싫어서 계속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했고 누구의 말로 움직이기 전에 알아서 무언가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때문에 나는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무언가 듣기 싫은 말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 표정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했던 나의 행동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항상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 물론 조금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 단점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렇게 쌓여온 나의 삶의 방식을 좋아한다. 분명 전에는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MBIT가 xNFP에서 xSTJ 같은 성향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어렸을 때 그 기억 하나로부터 비롯된 일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입 밖으로 거의 꺼내 본 적이 없던 그날의 사건이었다. 왠지 나에게 콤플렉스 같은 일이라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고 당시에는 너무 부끄럽다고 느낀 감정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그 일이 이후에 나에게 작용된 과정을 돌아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홧김에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변화시켰다. 아버지는 그날의 일을 기억이나 하실까.. 누군가에겐 사소했지만 누군가에겐 커다란 일이 되었다.

 

 우리가 자라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자신 어딘가에 하나씩 자리 잡아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책에서 좋은 글귀를 보고 생각하고 되뇌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은 우리가 직접 격은 경험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이 좋은 경험이었든 나쁜 경험이었든 상관없이 나를 더 좋은 단계로 발전시켜주는 좋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들을 잊지 않고 사소한 것이라도 지나치지 말고 나를 바꾸거나 더 노력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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