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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13. 2023

어떤 처음을 기억하시나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처음’이라는 경험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처음을 경험하기 전에는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한 번에 잘해서 쭉 잘하는 경우도 있고 첫 번째 결과는 비록 나빴지만 점차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정작 그 시점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너무 떨리고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수많은 ‘첫’ 경험들을 하게 된다. 셀 수 없는 첫 경험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바로 첫 술자리. 그래도 술은 꼭 성인이 되면 마시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했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이 정해진 이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새해 해돋이를 보러 여행을 떠났다. 12월 31일. 아쉽게 다짐을 몇 시간 남기고 그래도 거의 20세가 되었던 그날, 친구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한 잔, 두 잔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 이래서 술을 마시나 싶을 정도로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취하진 않았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았다. 바람 쐬러 바다로 나왔다가 결국 먹은 것을 확인하게 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때는 ‘아 왜 어른들은 이런 걸 좋다고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술 마신 걸 후회하게 되었다. 날카로운 첫 소주의 추억.


 그렇게 첫 경험은 지나갔고 며칠 후, 나는 또 친구들과 술자리에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날 힘들었던 기억은 어디에도 없고 나는 또 술잔을 붙잡고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은 비록 힘들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술은 점점 늘어서 ‘아 이래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거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술을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경험의 기억이 좋지 않아 다음 도전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다시 해보면 느낌이 180도 바뀔 수도 있구나, 또 한 번이 힘들어서 그렇지 두 번, 세 번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구나. 


 처음의 결과가 안 좋거나 너무 힘들어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조금 해보고 그만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러나 살다 보니 그렇게 그만둔 것에서 나의 또 다른 재능을 찾게 된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이걸 이렇게 잘했나? 싶을 정도로 왜 이걸 안 하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도 모르는 순간, 아마도 그동안의 경험들을 통해 ‘안 되는 건 안돼’라는 그 이야기의 결론이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가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서 생각을 조금 달리해 보기로 했다.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서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여러 번 해보기로. 그러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경험으로 알았기에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막상 한 번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해보면 그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런지 다음은 더 쉬워지게 된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는 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다. 매번 위시 리스트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본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소망에 불과하니 소망에 머무르길 원하는 나의 마음인가 싶다. 몇 년 전부터 글을 써보고 싶어 위시 리스트에 적어 놓았었는데 이렇게 글을 실제로 쓰기까지 수년간 리스트에만 올려져 있었다. 그래도 하나씩 글을 적어보고 하니 막연했던 소망이 좀 더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매년 세우는 신년 계획, 앞 장만 열정이 넘치는 새해 다이어리 같이 물론 용두사미와 같은 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또 우린 과거를 보고 이번엔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 해에는 2월까지 혹은 중간까지 쓰인 다이어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첫술에 배부르랴. 우린 언제나 발전하는 사람이기에 오늘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내일은 다시 나아가지 않을까? 해보기 전까진 결과를 모를 수 있으나 해보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도 볼 수 없다. 날카로운 첫 소주의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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