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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Jan 06. 2023

퇴사하고 다시 살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던 문구였다.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금방이라도 취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취업을 위해 싸워야 했다. 모니터에 뜬 축하 문구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고 10년, 20년 뒤에 내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었을까? 내 미래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있는 모습이었다.


 한 달, 6달, 1년... 3년, 5년, 그리고 어느덧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 동안 나 역시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패기에 가득 차 있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침에 겨우 눈을 떠 통근 버스에 몸을 싣고 비몽사몽으로 도착한 회사. 아침을 겨우 타고 사무실로 들어가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유야무야 시간이 지나고 일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 준비와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런 루틴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10년 전, 나의 패기 넘쳤던 그 시절에 바라보았던 미래가 이랬었나? 그런 생각도 사치였던 것 같다. 그저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다른 보통 이들과 비슷하게 시간이 소비되고 있었다. 점차 술과 담배는 늘어가고 몸은 더 피곤해지고 정신은 그의 배로 피폐해져 갔다. 그렇게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역시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아니, 몸은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지만 본인만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이상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도 돌보지 않고 이것도 그저 지나가겠지, 기계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기계로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심했던 증상은 결국 나를 기계에서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는데, 모든 잘 해내고 싶었는데, 그 모든 욕심이 인간이 아닌 기계처럼 살게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팠다. 불면증은 점점 심해지고 일주일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잠을 못 자면 근육통이 굉장히 심해지고 눈은 뽑혀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몰랐던 우울증까지 이미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처음엔 그게 단지 우울해지는 증상인 줄만 알았는데, 내 마음이 머리를 이성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갑자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고 몸이 가고 있었다. 약도 많이 먹고 술은 더 많이 마셨다.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더 깊어지고, 또 약을, 그리고 술을 탐하게 되었다. 그 지독한 순환을 끊어 내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정말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누구나 그 ‘갑자기’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정신적인 문제가 찾아올 수도 있고 몸 어느 곳에 병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몇 년 전 옛 동료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왔었다.


‘XX선배 기억나?’ 


‘응, 친하지는 않았는데 기억은 나. 왜?’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췌장암이라는 거야. 근데 그 말 듣고 보름 만에 죽었다는 거야.’


 충격적이었다. 겨우 40세 초 중반이었을 텐데,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다니. 게다가 남겨진 가족들은 어찌한다 말인가. 왜 우리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에 이렇게 소홀히 하는 것일까.


 물론 사실 나도 아프기 전까진 몰랐다. 항상 자신만만하다 적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모르고 살다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서 온몸이 아플 때 정신 차려야지 하다 가도, 보 잘 것 없는 종이에 손가락이 베여 피가 날 때 조심해야지 하다 가도, 지나면 또 우린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정신. 마음의 병은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또 얼마나 심각한지 옆에서 가늠할 수 없기에 더 위험하다. 사실 아프기 전에는 정신과라는 곳에 가볼 생각도 없었고 평생 올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나와 같이, 많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우울증과 감기는 다를 것이 없다. 치료해야 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참아야 한다, 열심히 해라 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힘들다 말하면 겨우 그것 가지고 투정이냐 라는 말로 돌려받았다. 근데 힘들 걸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게 참으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아픈 이후로 지인을 만날 때 우울증이 온 것 같다는 농담삼은 말을 들을 때면 항상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사실 마음의 병은 담아내지 말고 쏟아 내야 한다. 그에 상담만큼 좋은 것은 없다.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서로 대화하듯 말이다. 결국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은 나 자신이 행복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참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 말을 해야 한다. 궁예가 아니고 서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인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 가족. 그리고 나도 그들을 믿어야 한다. 잠을 못 자고 약을 먹고 술을 찾는 깊은 악순환 속에서도 옆에서 끝까지 나를 지켜준 나의 아내가 없었다면 사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아내 덕분에 그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제 10년 넘게 기계 속 부품처럼 살아왔던 나를 정리하고 나답게 살기를 택했다.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에서 시작된 10년여의 시간은 아쉽게도 나의 삶이 아니었다. 물론 퇴사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누구든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동료들은 물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결국 저질렀다. 이제 몸을 추스르고 나로 살아야겠다. 다시 꿈꾸고 생각하는 내가 생각했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우린 한 번 사는 인생을 살고 있고, 그 인생은 우리의 건강한 몸과 정신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며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최고의 기업에서 정점에 올라가는 삶을 사는 것도, 자신의 사업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자 달라도 모두 우리 자신을 잘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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