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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Jul 29. 2016

유치한 사랑의 노래 (4)

 첫 번째 기억


- 자, 그럼 가장 인상 깊었던 첫 번째 기억은?
- 그야 뻔하잖아....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커피 잔으로 손을 내밀며 대꾸했다. 여자는 살짝 윗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 뻔하다니... 그게 뭔데?
- 야.... 이거 실망인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내 여자 친구 맞니?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여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 들은 기억이.... 아니야, 분명 말한 적이 없다니까~ 혹시 딴 여자에게 말했냐!
- 그 참.... 실망이네요~!


남자가 여자의 볼을 잡아 흔들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여자는 남자의 무릎을 흔들며 재촉했다. 


- 난 분명 들은 적이 없다니까~. 그게 뭔데?
- 그야 당연히 널 봤을 때지. 
- .....


여자는 뜻밖의 대답에 말없이 남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남자는 여자를 빙긋 웃으며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허공에 지난 기억을 그려내며 말을 이었다.


- 그때가 몇 시 쯤 이였지.... 해가 기운 건 아닌데 거기가 건물사이인데다가 나무그늘아래라서 초저녁같이 어둑어둑했었잖아. 어떤 커다란 눈을 가진 얘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는 날 쳐다보는데 갑자기 말을 못하겠더라고. 마치 잠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지. 웃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편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호기심에 가득 찬 두 눈이, 그래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들어주겠어... 뭐 이런 느낌이었거든. 보통은 여자들이 날 처음 보면 좀 어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왠 고딩같이 생긴 여자가 말이야. 잠깐, 흠칫했다가 그 때문에 또 잠시 내심 놀랐다가...... 그래서 정말 필요한 말만 몇 마디 하고 말았지.


남자의 꿈꾸는 듯한 표정을 바라보며 여자는 남자의 무릎에 턱을 괴었다. 그때 처음 보았던 남자의 두 눈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 치... 그래서 그렇게 무뚝뚝해보였구나. 그때 난 참 돌덩어리 같은 사람이구나... 어디 비집고 들어갈 구석도 없어보였거든.... 이렇게 말 많은 남자일 줄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어? 그래서 꽤 긴장했었다는 거네. 그래도 넌 처음부터 날 좋아하지는 않았잖아?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리자 남자는 흘러내린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던 두 개의 별이 남자의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 별이 내게 내려앉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상상할 수가 있었겠니.... 


- 물론, 그때 기억을 미화하려는 건 아니고.... 아마 우리가 지금까지 안 만났으면 그냥 흠칫했던 인상, 어쩌면 지금쯤 기억조차 남아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겠지. 그건 처음부터 그렇게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을 거야. 근데 그 뒤로 널 조금씩 알아가면서... 마음 졸이며 좋아하게 되면서... 또 이렇게 사귀어오면서 계속 그때의 기억이 중첩되어서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으로 굳어져 버린 거 같아. 아마 하루에도 얼마나 그때를 생각하는지 셀 수도 없을걸. 그냥 널 떠올리면 그 순간 그 장면이 자동으로 스쳐간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순간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널 처음 본 순간이니까.....


남자는 목소리에 가느다란 떨림을 느낀 여자는 뭔가 울컥 쏟아낼듯한 기분에 남자의 눈을 쳐다볼 수 가 없어 남자의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여자가 남자의 다리에 엎드린 채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 참, 다행이야...
-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지.


남자가 여자를 끌어올려 품에 꼭 안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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