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화법으로 풀어가기
드디어 기다리던 새 텐트가 왔다!
지난번 캠크닉 페어에서 봤던 와일드 필드 오스카 하우스! 가지고 있는 캐빈하우스와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를 가진 텐트라 눈길이 많이 갔던 텐트다. TPU창까지 포함하여 89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고 다양한 피칭이 가능한 텐트 같아서 구매욕에 불길이 타올랐다.
어쨌든 이 텐트를 멋지게 피칭할 장소가 필요했다.
제품 이미지 사진에 나온 것처럼 푸른 숲이 가장 어울릴 거라 판단하여 잣나무 숲이 배경이 되어줄 곳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유식물원 V존이다. 전 주에도 유식물원이었는데, 이번 주도 유식물원이다. 사실 같은 캠핑장을 연거푸 가진 않는 편인데 유식물원은 존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마치 다른 캠핑장에 온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결정하였다. 주말 같으면 어림도 없는 V존 사이트지만 우리는 일요일 캠퍼라 여유 있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사이트는 V존 제일 안쪽에 위치한 8번 사이트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드디어 개봉박두!
새 옷도 기분 좋지만 새 텐트 피칭하는 날은 진짜 집 한 채 새로 산 느낌이라 그 즐거움이 또 다르다. 이 텐트의 특징은 가이드 웨빙으로 텐트 칠 자리를 미리 만들어본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뼈대를 세우고 본체 스킨을 피칭하면 된다. 완성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부지런히 끼우고 맞추며 피칭하였다. 생각보다 빠른 피칭에 우와! 하려던 순간! 오스카 하우스 로고가 있는 쪽이 앞이라고 하여 설치했는데, 아니라며 앞뒤가 바뀌었다고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하며 기분 좋게 바꿔서 피칭!
그, 런, 데,,, 신나게 피칭을 끝내고 났는데 또 앞뒤가 바뀌었단다.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텐트 앞쪽에 있어야 할 박쥐날개 모양의 사이드 스크린이 없다! 이너 텐트까지 다 쳤는데... 이건 뭐 똥개 훈련도 아니고...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헤매고 있다니... 처음에 했던 게 맞는 거였는데... 오스카 하우스라고 크게 쓰인 쪽이 뒷면이다.
그냥 이대로 지내자는 포토라이(남편의 닉네임)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냐! 그럴 순 없어. 다시 치자!"
몸도 슬슬 힘들어지고 있는데 제대로 공부를 안 해온 포토라이가 원망스러워 열이 확! 끓어올랐다. 첫 피칭하는 날은 우왕좌왕 헤매는 게 다반사이긴 하지만 6년 이상이나 된 전문 캠퍼로서 이젠 좀 안 헤매겠지 하며 안일한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었다. 며칠 전부터 피칭 영상을 찾아보고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있길래 믿었는데... 도대체 뭘 본 건지. 앞뒤 구분도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냐 말이다.
하지만 남편만 믿고 신경 쓰지 않은 내 잘못도 있기에 여기까지만 열을 내기로 나와 타협했다. 이런 불상사를 없애려고 그러는지 요즘은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개입시키려 든다.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하던 일도 같이 와서 봐야 한다고 성화다. 책임분가를 하려는 속셈인 듯하다.
제대로 피칭을 끝내고 나니 화났던 마음이 스르르 풀릴 만큼 텐트의 모습이 넘 마음에 들었다. 사방으로 다양하게 열리는 창이 예쁘고 이너 텐트 안에 에어매트 펴고 앉아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하늘과 나무들의 푸릇푸릇함뿐인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너 텐트를 치고도 넉넉한 리빙 공간의 느낌도 너무 좋고 말이다. 게다가 앞쪽 문을 업라이트 하면 생기는 사이드 스크린은 시선차단 효과와 함께 뭔가 실내가 확장된 그런 느낌을 준다. 굳이 타프를 안 쳐도 될 정도로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도 매력 요소이며 좌우로 나있는 격자창문은 감성을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캠핑은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집에서도 인테리어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새로운 모습에 기분이 좋은 것처럼 캠핑은 매주 다른 장소에서 그날그날 끌리는 대로 세팅하며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 한 단짜리 선반을 나란히 놓기도 하고, 두 단씩 겹쳐 놓기도 한다. 또 테이블이나 의자를 바꿔 가져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런데 텐트가 바뀌면! 그것도 새 텐트면! 그건 정말 즐거움이 몇 배가 될 수밖에. 소꿉놀이 하듯 하루 내 집 짓기의 즐거움을 만끽한 하루였다.
하지만 오늘처럼 텐트 피칭하면서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생길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남편의 꼬임으로 시작한 캠핑이라 모든 의사 결정이 남편 위주였다. 그래서 큰 갈등이 없었으나 요즘엔 나도 캠핑 경력이 쌓이면서 자아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래서 내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내 말 대로 안 되면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그럴 땐 1인칭 화법으로 내 주장을 부드럽게 표현해 보고 있다.
"음~ 이건 내 생각인데, 나는 ~~ 했으면 좋겠어. 어때?"
이렇게 말이다. 물론 듣는 사람은 말투만 바뀌었지 강요나 마찬가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했으니 듣는 입장에선 거부 반응이 좀 덜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도 한번 내 감정을 순화시키게 되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캠핑은 같이 하는 것이니 맡겨두지만 말고 나도 알아보고 공부해야겠다. 이번 일도 남편에게 너무 맡겨두고 의지한 탓에 벌어진 해프닝이니 말이다. 아마도 나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남편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또 고마운 일일 수 있겠다. 참, 세상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