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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Oct 03. 2024

입실 시간에 맞추자 VS
되는 대로 갑시다

계획형 J의 내적 외적 갈등


캠핑장에 갈 때마다 생기는 일은 입실 시간 때문에 소소한 다툼이 생기는 거다.

1박 캠핑이라 되도록이면 입실 시간에 맞춰 가야 오래 즐길 수 있다는 나의 생각과

준비하다 보면 늦을 수도 있지라며 되는 대로 가자는 남편의 생각이 부딪친다.

전날 내가 묻는 말,

"내일 어디로 가? 입실 시간은?"

대개 1시나 2시가 입실 시간인데, 간혹 어떤 캠핑장은 12시 이전에 와도 좋다는 곳이 있다. 

게다가 강원도나 충남 같은 먼 곳으로 가게 되면 서둘러야 한다.

가는 시간이 보통 2시간이지만 먼 곳은 3~4시간 걸리는 곳도 있다.

근데 근교 캠핑장에 가듯 같은 시간에 출발한다?

그러면 3시가 넘어서 도착하기도 한다.

그럼 기분이 망가진다. 

캠핑장 도착하자마자 꿀맛 같은 라면도 먹어줘야 하는데 그것도 할 수 없고

텐트 치고 뭐 하다 보면 금방 저녁 먹을 시간.

그것도 여름이면 해라도 길지 겨울엔 5시 넘으면 어둑어둑해진다. 

결국 도착해서 텐트 치고 저녁 먹으려고 이 캠핑을 왔단 말인가!

꾹꾹 눌러두었던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와 폭발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캠핑 와선 되도록 싸우지 말자 주의인데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저녁 먹고 자고 아침 먹고 짐 싸고??

정말 싫다. 내가 캠핑을 하는 목적은 힐링이다.

일찍 와서 주변도 둘러보고 여유 부리며 간식도 먹는 그런 힐링 타임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금세 저녁?

이건 힐링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래서 멀리 갈 때는 부지런히 출발하자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지만 어그러질 때가 많다.


남편도 할 말이 많단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되도록 입실 시간에 맞추려고 하는데 그거 맞추려면 스트레스 쌓인다.

그냥 좀 상황 되는 대로 가자!


물론 남편이 준비할 게 많다는 건 안다.

그래서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좀 서둘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화가 나는 거다.



작년에 이런 일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몇 번 갔던 화천에 있는 캠핑장으로 가는데

그날따라 늦게 일어나서 여유 부리며 커피까지 마시고 늦게 출발.

마음이 급해진 나는

"늦었어. 빨리 출발해야 돼."

눈치를 살피며 재촉하듯 말했다. 그러자

"나도 좀 쉬자. 여태 짐 날랐어."

그 말에 참아야지 했다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

"그럼 좀 어제 실어놓지. 일찍 일어나던가!"

억지로 톤을 낮춘 짜증 담긴 소리를 내뱉는다.

1단계 분노 폭발이다.


근데 나를 더 기가 막히게 하는 말.

"아!  이소 가스 없다! 마트에 내려줄 테니 사와."

'아이고~~~ 그래, 참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숨 고르기를 했다.

근데 마트에 이소가스가 없다!

2단계 분노 폭발이다.


그래서 근처 다이소로 이동. 겨우 이소가스를 구입한다.

시계는 12시 45분을 넘어섰다. 2시 입실인데 이 상태로 가면 3시경 도착. 휴우~~

기분이 너무 다운 돼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면 싸우게 될 테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근데 기름도 넣어야 한단다. 주유소에 들러야 한다고...

이건 뭐지? 나의 분노 게이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멘트들.

아니 이렇게 들러야 할 곳이 많으면 좀 빨리 나올 생각을 했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늑장을 부렸단 말인가!

3단계 분노는 싸울 마음조차 태워버렸다. 


하지만 서로의 불편한 마음을 읽어버렸기 때문에 그 침묵이 소리 없는 악다구니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의 악다구니는 심해진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캠핑은 그냥 포기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변해가는데 우리 남편은 아닌가 보다. 운전 중 몇 번이나 거듭되는 "아~ 에잇.." 짜증과 자책의 뉘앙스가 듬뿍 담긴 감탄사를 내뱉는다. 

길을 놓친 거다. 아주 갈수록 태산이다.

근데 네비가 알리는 도착 시간이 3시 25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4시 20분으로 변해버렸다.

'뭐지? 뭐가 잘못됐나? 에라 모르겠다.'

이런 심정으로 가고 있는데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하는 말!!

"아~ 뭐지?"

화천으로 빠지는 길을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된 거다.

4단계 분노 폭발. 이를 어째.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날씨까지 꾸물거려 기분은 정말 엉망진창 쓰레기가 되었다.


도착했는데 도무지 뭘 하고 싶지가 않다.

오늘 여러 번 꼬인 실타래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느낌 때문에 캠핑이고 뭐고 다 귀찮아졌다.

근데 우리는 유튜버라 촬영까지 해야 한다.

아!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잠시 서로의 시간을 갖고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대책회의를 한 후 내린 결정은 '그냥 하자.'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는가!

서로 말없이 세팅을 끝냈더니 6시가 다 되었다.

마음 다스리기로 나를 추스르고, 일단 웃어보자. 

그리고 포실님들(구독자 애칭)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니

웃으면서 푸념하고 털어내 보자 결심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냈더니 그 시간 이후로는 마음의 분노가 좀 가라앉았다. 포실님들에게 고자질하듯 오늘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며 공감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엉망이 된 하루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무사히 지나갔다. 

기대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애쓰지 말라고 했는데

그 하지 말라는 걸 오늘 최선을 다해 하고 말았다.

정시에 도착하여 내가 계획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고,

어그러진 기대 때문에 남편을 웬수 보듯 미워했으며,

최대한 원색적인 비난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하며 분노를 찍어 누르는 애를 쓰지 않았던가.


같은 계획형인 J가 어찌 이리 다른 건지...

돌아보니 내가 너무 깐깐하게 군 것 같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하지만

이후에도 입실 시간에 대한 에피소드는 종종 이어졌고, 그 문제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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