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 Sep 15. 2024

자연에 익숙해진다는 건

캠핑 에세이 - 불편해야 캠핑이지

자연에 익숙해진다는 건 감수할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듯 캠핑도 그렇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하고 힐링하지만 그 아름다운 자연 안에는 주먹만 한 나방도 있고 내 몸 여기저기에 빨대를 꽂고 피를 뽑아가는 모기들도 많다. 게다가 아무리 쫓아도 줄기차게 날아드는 파리들과 눈 주변에서 아른아른 알짱거리며 잘도 피해 다니는 얄미운 날파리들, 개미들 등 벌레 천지다. 그뿐인가! 등골 오싹하게 만드는 뱀의 출현과 불쑥불쑥 튀어올라와 인사하는 개구리, 두꺼비까지 이렇게 깜짝깜짝 놀랄 만한 동물들까지가 자연이다. 



캠핑 첫 해에는 빨간 눈 달린 거대 나방의 방문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연도감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 생김새가 뚜렷하게 관찰되는 대왕 사마귀에 놀랐으며 야침까지 기어올라오는 개미들 때문에 소름 끼쳐했다.  그러다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벌레들의 침입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에 알맞은 장비로 바꿔가며 벌레들과의 공생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는 동물은 고양이다. 어느 캠핑장이나 터줏대감처럼 상주하며 어슬렁거리면서 캠퍼들을 살피는 고양이에게는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6년을 넘게 매주 캠핑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 사건은 얼마 전 여름 계곡 캠핑장에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바돔에 야침(야전침대)을 피칭하고 평화로운 잠을 자고 있었다. 근데 뭔가 다리 쪽 이불 위로 지나다니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평소에 우리 집 강아지가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서성거리는 편이라 '응~ 몽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아! 여기는 집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쫙! 고양이라는 걸 감지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남편을 깨웠다. 

그때 위기를 감지한 고양이가 내 몸 여기저기를 후다닥 밟고 뛰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 소리에 더 다급해진 고양이가 남편 야침으로 뛰었고 남편도 놀라 허둥대다가 텐트 출입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튀어나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도대체 뭔 일인지 벌렁대는 가슴이 진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인스타 피드에서 추운 겨울에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와 쿨쿨 늘어지게 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자주 본다. 흔히 간택당했다고 하나? 근데 그 캠퍼들은 나처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기꺼운 마음으로 자리 한 켠을 내준다. 그러면 한 마리가 두 마리 되고, 두 마리가 세 마리 될 정도로 소문 듣고 찾아온 고양이들이 장박 텐트에서 더부살이를 한다. 


이런 분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고양이? 그게 왜?' 하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다 똑같지 않으니 어쩌랴. 나는 고양이가 무서운데...


또 한 번은 몇 년 전 겨울이었다. 텐트 안에 화목 난로를 피우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오니 정말 고양이라 부르기가 어색할 정도로 투실투실 살찐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들어왔는데도 도통 나갈 생각을 않고 돌부처처럼 앉아 텐트 안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서 있고 남편과 캠장님이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날 잡아 잡수.' 하는 느낌. 결국 남편은 고양이를 들어 내보내겠다 했는데 고놈 무게가 상당하다고 했다. 결국 온 힘을 쏟아 쌀포대를 들 듯 고양이를 들어 밖으로 내놓았는데, 요 녀석이 또 다른 텐트를 기웃거리며 초원의 배부른 사자 포스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아마도 많은 캠퍼들이 텐트 안에서 재워준 모양이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 캠퍼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녀석들이 그렇게 뻔뻔 당당한 태도를 취했을까? 눈치 보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당당하게 먹고 잘 곳을 고르는 갑의 위치에 있는 고양이들이다.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섬에 사는 고양이들은 좀 더 대담하고 야생적인 면이 강해서 텐트를 찢고 들어오기도 하며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공격 태세를 취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랴.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고양이들이니 합방은 힘들어도 잘 지내보기 위해 간식 정도는 챙겨 다니고 있다. 


두 차례의 고양이 사건 이후로 우리는 스커트가 없는 텐트나 이너 텐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스커트가 있는 텐트를 사용할 경우 온갖 물건들로 스커트가 뜨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그라운드시트를 깔아 스커트의 들뜸을 막기도 한다. 고양이들과 잘 지내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캠핑은 자연과 친구가 되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내가 노력하면 자연은 더 많고 좋은 것을 내어준다. 그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는 캠핑을 하는 것이므로 위험 요소는 대비하며 감수할 것은 감수하는 것. 그것이 캠핑을 하며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캠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