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전날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가 없다. 시아버지도 없다.
때문에 나는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없다.
그래도 나는 네 명의 고모가 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시누이가 네 명이다.
벌써 추석이다.
나는 달력에 적힌 숫자보다 집에 쌓이는 음식을 보고 명절을 알아챈다.
추석 일주일 전,
엄마는 노트를 들고 소파에 앉는다.
배, 홍시, 사과, 산적 고기, 갈비, 당근, 당면, 표고버섯, 청주, 무, 다진 마늘, 양파, 깐 밤, 유과, 약과
이미 많이 적은 것 같은데 엄마는 뭔가 모자라다며 펜을 들고 계속 고민한다.
벌써 추석 이틀 전이다.
집안의 미묘한 기류 흐름을 잘 파악하라는, 딸의 임무가 주어졌다.
"오늘 저녁은 좀 맛있는 거 먹을까?"
평소 매뉴얼에 없는 엄마의 질문이 떨어졌다. 대답을 잘 해야 했다. 아무리 바쁘고 글을 쓰고 녹음 편집을 해야 된다 하더라도 오늘은 무조건 취소다.
"그래 뭐 먹을까? 스페인 음식 어때?"
"아아. 좋지."
다행히 대답을 잘 했나 보다.
깊은 냄비에 갈비를 재워두고 엄마와 집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주말이었고 음식점 앞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꽤나 복잡해서 개인의 행복한 식사는 즐길 수 없는 자리에 앉게 되어 엄마에게 물었다.
"자리 괜찮아?"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걱정과 달리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내 옆에 팔짱 낀 엄마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나한테 주는 선물인 거지, 내일 요리할 나를 위해서."
괜히 짠해졌다. 어느새 나보다 키가 작아진 엄마를 보는 마음이 찡했다.
어릴 적엔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라서 그냥 소파에 앉아 과자나 뜯어먹었다-녀석 오빠 꼬셔서 일 좀 같이 하지-.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는 친가 사람들 앞에서 무조건 엄마 편을 들었다. 마치 고모들 일부러 들으라는 듯 아빠도 일 좀 하라며 외쳤다.
하지만 지금 보니 모두 옳지 않았다. 현명하지 않은 태도였다.
딸이 아빠 흉을 봤을 때 고모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에겐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고모들은 우리 엄마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뿌듯하게 슬쩍 쳐다본 엄마의 얼굴에서, 순간 포착한 표정을 발견한 이후에 나는 다시는 삐약, 소리 지르지 않는다. (대신에 유머-라기보단 해학-를 장착했다.)
엄마에겐 시부모님이 없지만 시누이가 네 명이다.
나에겐 언제나 내 편인 네 명의 고모가 있다. 그리고 추석 선물이라며, 지갑과 반지를 추석 전날 사준 엄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