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마 May 07. 2020

꽃이 예뻐보이면 나이 든 거라던데

꽃 선물







꽃이 예뻐보이기 시작하면 나이 든 거라던데.




큰일이다. 꽃이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계기는 뜻밖에 찾아왔다. 3년 전, 책 만들기 수업에서 처음 만난 동생과 약속 있는 날이었다. 친구는 참 마음이 예뻤다. 책을 냈으면 출간 축하한다며 선물, 생일이 지났으면 지났다고 선물을 주는 아이였다. 사람 무안하고 고맙게 매번 소소한 선물과 작은 편지로 나를 감동시켰다.


이번에는 나도 선물을 준비했다. 한 달 전에 쓴 소설집을 초록색 리본에 묶었다. 가방에 넣고 나가는데 왜 내가 기쁜 건지. 물건을 건네줄 때의 뿌듯함과, 서프라이즈에 놀랄 친구의 표정을 상상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타인을 위한 이벤트에 오히려 내 기분이 들떴다.


인천 골목에 위치한 작은 개인 카페에 도착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친구가 반갑다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넙죽 달려가서 요란을 떨었다.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회사 관두고 어디 놀러는 갔고?  친구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취소했다며 웃는 얼굴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막 땅바닥에 짐을 내려놓으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친구가 이번에 준비한 선물을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노란 수선화였다.





예상치 못한 존재에 정말 자지러지게 웃었다. 살다 살다 꽃다발이나 다육이는 받아봤어도 뿌리 식물 받기는 처음이었다. 친구는 오는 길에 급하게 샀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나는 고개를 툭 떨군 수선화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작고 노란 생명체를 만지기가 무서웠다. 새끼 고양이를 덜컥 분양받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키우는지, 물은 얼마큼 주고 햇빛은 몇 시간 보는 게 좋은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일단 집에 데려와 베란다에 두었다. 덩치 큰 엉아들 사이에서 노란 수선화가 밝게 빛났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음영진 곳에서도 내 수선화는 유독 돋보였다. 



너무 귀여워. 다정해. 사랑스럽잖아. 



모두 꽃에게 처음 받아본 감정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꽃에게 연심을 품었다.





다만 꽃다발 구입은 여전히 망설였다. 양동이에 꽂혀 있던 꽃다발이 날카로운 가위에 줄기가 잘려나갈 때면 내 팔이 잘린 듯 괴로웠다. 과한 감정이입인 것을 알지만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식물은 고통을 안 느낄까?



나는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식물은 인간과 '같은 종류'의 고통은 못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경우 외부 자극이 있을 시 신경 세포를 통해 감지하고 뇌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렇게 뇌가 통증을 인식하는 인간과 달리, 식물에는 뇌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과 '같은' 뇌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벌레가 이파리를 씹어먹거나 줄기가 잘릴 때 외부 자극에 대한 통증 신호를 만들어 잎에서 잎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화학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아 뇌의 기능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최근 논문 결과였다.


논문을 읽어도 마음이 찝찝했다. 행간 사이사이에 빠져나갈 구멍이 보였다. 사실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말이 길어진다.


최근 '반려식물'이라는 합성어가 생겼다. 


누군가는 도둑고양이라 부르는 애완동물이, 다른 이에게는 소중한 반려묘가 되는 것처럼 내게 식물은 반려 식물에 가까웠다. 꽃다발을 버릴 때면 마음이 아팠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까지 매일 화병의 물을 갈았다. 빛이 좋은 정오면 햇빛 좀 먹으라며 테라스에 내놓았다. 저녁이 되면 방으로 데려와 함께 잠들었다. 그렇게 정을 붙였던 꽃이 쓰레기통 위에 버려질 때면 마음이 아팠다. 쪼그라든 꽃잎과 아직 펴지도 않은 꽃봉오리가 공존하는 줄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쓰레기봉투를 외면했다.





마음이 안타까울 때면 산책을 했다. 집 근처 공원에 핀 싱그러운 튤립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넓은 토양에 뿌리 뽑힐 일 없이 열심히 자라나는 꽃들을 응원했다. 무심코 지나쳤을 풍경 속에 멈춰 선 채 꽃 이름을 검색했다. 하나하나씩 외우기 시작했다. 


프리지아, 라넌큘러스, 작약, 철쭉, 수국, 소국, 스프레이. 


잠시 깊은 생각은 접어두고 나는 이 기쁨을 친구들에게도 선물했다. 19년 지기 친구에게 대뜸 꽃다발을 안겨줬다. 가방에 몰래 숨겼다가 짜잔, 프리지아 한 다발을 꺼내들자 친구가 깜짝 놀랐다. 어머 뭐야! 하고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내 활짝 웃었다.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우리는 꽃을 주제로 떠들었다.


"나 사실 제일 좋아하는 꽃을 튤립이거든."


친구가 말했다.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니 19년 알고 지내면서 나는 친구의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뭔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때부터 지인들의 '최애 꽃'을 수집했다. 우리 엄마는 작은 국화. 아빠는 잘 자라는 스킨답서스. 동료 작가님의 사랑은 리시안셔스. 대학 동기의 탄생화는 칼세올라리아.



아침 8시. 투표를 마친 아침에 엄마와



꽃집에 들리면 허리 숙여 이름을 살폈다. 친구가 언급한 꽃이면 그렇게 반가웠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회가 닿으면 구매했다. 신문지나 포장지에 돌돌 말아 친구에게 안겨주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깜짝 선물에 모두가 하나같이 물었다. 그러면 나는 예전 내게 수선화를 주었던 친구처럼 말했다. 오는 길에 생각나서 샀다고. 내 소중한 사람들 손에 꽃을 쥐어주고 싶었다. 꽃을 든 남녀에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 길 위의 행인이 내 친구와 엇갈릴 때 많이 쳐다보길 바란다.



내 친구 꽃다발 받는 사람이야!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는 사람이라고, 그걸 티 내고 싶다. 네 손에 들린 선물이 너의 자존심을 높여주길. 너를 향한 내 사랑을 모두가 알 수 있게끔 나는 요즘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기사들>



“식물에도 작은 뇌가 있다”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B%9D%EB%AC%BC%EC%97%90%EB%8F%84-%EC%9E%91%EC%9D%80-%EB%87%8C%EA%B0%80-%EC%9E%88%EB%8B%A4/


"애벌레 공격에 '위험해!' 식물, 통증 신호 만들어 잎에서 잎으로 전달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0/2018092000159.html


"식물도 통증을 느끼는가"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80824/1p3p8o29.html


    




매거진의 이전글 14살부터 소설을 써왔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