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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May 14. 2016

깊은 새벽 전화에만





   깊은 새벽, 보고 싶어 건 전화에 그녀가 화면에 들어섰다. 폭신해 보이는 흰색 베게에 얼굴을 파묻곤 눈만 쏙 빼, 나를 바라봤다. 길게 침대에 엎드린 채 위로 꼰 다리가 허공에서 살랑거렸다. 화장은 이미 지운 모양이다. 눈가를 고양이처럼 바싹 세웠던 아이라인이 사라진 그녀는 낮과 달리 청초했다. 


    “뭐야, 얼굴 좀 보여줘.”


그 모습이 귀엽지만, 난 조급하게 말했다. 및낯이 부끄러운 것인지 그녀는 안 돼, 라며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화면 옆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동그란 렌즈를 감싼 갈색 테 안경는 이런 새벽의 급습 화상통화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다, 그걸 걸친 그녀의 얼굴은 진귀한 것이고. 


    아 빨리, 나는 어린애 달래듯 어루었다. 아니 어쩌면 아이처럼 보챈 것은 내 쪽일지 모른다. 잠시나마 그녀는 꽤나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고된 하루로 눅눅해진 내 마음을 어찌 읽은 건지,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 채 천천히 베게를 턱 아래로 내렸다. 앞머리 없는 이마를 타고 내려 온 옆머리는 안경을 타고 내려(와) 자연스레 볼에 음역을 만들었다. 뽀로퉁하게 살짝 올라온 윗 뺨에 금방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 몇 번이나 보여준 밋낯은 아직 부끄러운지, 그녀는 머리칼 그림자 속에 슬쩍 얼굴을 감췄다. 검은 커튼 사이로 살짝 드러난 그녀 얼굴에 보조개 패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그 무엇보다도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만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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