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인 삶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요구되는 사회의 모습 속에서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매일 찾아오는 반복된 순간에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며 복기하고 수정하여 적용한다. 하루를 마감하기 직전의 순간을 살펴보면, 그 순간마저도 계획의 일부로 편입되어 소비된다. 충전기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어제 아침에 약간은 멍한 정신으로 꺼 놓은 알람 목록을 쭉 훑어 필요한 만큼 켜짐으로 바꿔놓는다. 계획이 쌓이고 쌓여 무의식적 반복과 습관의 영역으로까지 진출한 예시를 매일 밤 목격한다.
아침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계획된 시간까지 준비를 마쳐야 하고 지하철 시간표나 버스 위치 정보 따위를 살펴보며 집에서 출발할 시점을 계산한다. 무더운 여름과 격렬한 추위의 겨울에는 특히 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직장에 도착해 비슷한 시간까지 그날의 수업 준비를 마치고 정확히 계획된 시간에 수업을 시작해 정확히 똑같은 시간에 수업을 끝내는 작업은 무엇보다 완벽한 계획의 일환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배부되는 방학 숙제의 첫 페이지에는 늘 동그라미 일상 계획표가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듯한 선을 그어 매일의 계획을 적어 넣었지만 결국 벽 한 곳에 부착된 채 방학 내내 외면받는 운명에 처해진 계획표는 사각의 표로 바뀌어 플래너 혹은 다이어리 속에 제자리를 찾아 정착한 채 생을 이어오고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에게까지 손길을 뻗치는 계획표는 다시 그들의 자녀에게 옮겨가는 삶을 반복한다. 이보다 완벽한 기생체는 없을 테다.
이십 대 중반 이후로 알람을 제외하고 더는 계획에 손대지 않는다. 플래너를 구입한 기억과 사용한 경험은 저 멀리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는 기본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여가생활 일정에 대해 기록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빼곡히 차 있는 달력을 보며 이유 모를 뿌듯함에 으쓱하다가도 텅 비어있는 다음 달 달력을 볼 때면 되려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감정 변화가 흥미롭다.
채워짐이 부여하는 뿌듯함과 비워냄에서 오는 편안함이 공존하는 이유를 조금 더 들여다보니 몇 년 되지 않은 다짐이 지금껏 걸어온 길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꿈은 꾸는 것으로 족하니 매일에 충실하고 하루를 살자.'
2023년 9월의 절반이 막 지난 지금, 남은 몇 개월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는 오늘을 살아갈 내가 결정한다 굳게 믿는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꿈과 수업을 더 잘하고 싶은 꿈과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꿈과 좋은 사람을 만날 꿈을 꾸고 있으므로 오늘의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수업 연구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친절함과 관심의 말을 건넨다.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이 내일이 되어 남은 한 해를 채우고 내년의 시작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기를 마찬가지로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