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친절하던 이야기는 입을 닫았다
모순의 기록들
나는 걱정해주던 마음들은
차갑고도 유쾌하기도 하며
언제나 의문 투성이였는걸
위로가 쿨하고 장난스러울 수 있는지
솔직하게 말했다면 최선을 다해 표현해줬을 텐데
나에게만은 답을 줬어야지
미워하고 부끄러워지더라도
언젠가 바꾼 선택들 때문에
인연은 저질러지는 거야
원치 않았지만 쉽게 풀려 나가던 순간들이 모여
나중에야 진심이 되고 뜬금없이 전화가 울리듯
무심코 흘려 놓은
나의 실수가 정작 나에게는 이렇게 늦게 도착하고
얼마 전, 나에 대한 문답을 지인들에게 돌린 적이 있다. 나에 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제삼자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중 단점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한 답이 내 속을 후벼 팠다. “상황에 따라 말을 쉽게 바꾼다”. 살면서 내가 실수라고 여기는 것들은 바로 나의 이 점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고 다짐해놓고 저지르는 짓들. 나는 그것을 실수라고 부른다. 누군진 몰라도 그 친구는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실수는 ‘흘린’ 기분이 든다. 특히 내가 실수라고 여기는 것은 저지른다기보다는 흘렸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내가 흘린 실수들은 대부분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멈추고 싶지 않은데 멈추고 싶다고 말하거나, 다 알면서 모른 척했거나. 인생 대부분을 쿨하고 유쾌한 듯 살고 있지만, 정작 진심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좋아한다는 표현도 싫다는 표현도 모두 말이다. 원하는 인연은 놓쳤고, 원치 않는 인연을 잡았던 실수의 순간들이 지금 모순된 나를 만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대부분 차가운데 나에게만은 친절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왜 내게 살갑게 대해줄까 항상 의문이었다. 그렇게 의문을 품던 마음이 드러난 걸까.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전화를 몇 번이나 거절하던 때가 있었다. 힘들수록 남에게 티 내지 않는 내 성질머리 때문이었다. 전화가 온 순간을 분명 기억한다. 그렇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남들이 뭘 안다고 날 위로하겠어?’라는 못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난 정말 널 걱정했는데” 라며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하는 얘기겠거니 하고 흘려들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아마 그 뒤로 나는 그의 사람이 아니게 됐던 것 같다. 다른 여러 계기로 인연이 끊어졌지만 나중에야 내가 그의 진심에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조금 얄밉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면서 부끄러워진다. 그 실수가 내 삶에 이렇게 깊이 박힌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다시 연락해서 잘못했다고 한들 부러진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시절은 이미 다 한 것이니까.
흘린 실수를 닦고 다시 흘리지 않게 나를 잘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그게 너의 최선이었어,라고 달래주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할 때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혹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내 모순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에게만은 실수하지 않도록 말이다.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