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마주치는 하루마다 새로운 방이다
관찰하는 인간은 아주 가끔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여기곤 한다
불행과 눈 마주칠 때마다
호기심은 허름해진다
그냥 받아들이자 뱅글뱅글
벽을 올라타는 밑바닥의 이야기들은
모험일 뿐이다
나의 시간을 이사다니면서
불안의 곰팡이를 키운다
곰팡이를 쿠션 삼아 처연해진
나의 관찰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잘살고 있던 집을 팔고 반지하로 이사를 한 시점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5번 정도 이사를 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를 중심으로 같은 동네를 뱅글뱅글 돌며 더 작고, 더 허름하고, 더 싼 집을 찾아다녔다. 세 번째 이사였던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우리 또 이사 가.” 라고 말하던 엄마의 처연한 얼굴이 생각난다. 이런 이유로 이사는 나에게 자포자기 또는 불행한 삶으로 각인 되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이 어두웠던 것만은 아니다. 반지하로 처음 이사 갔을 때, 나와 남동생은 밖을 내다보면 땅바닥이 보이는 창문을 흥미롭게 관찰하고는 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다리만 보이는 것도,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곰팡이가 내려오는 벽이나 콘크리트가 다 드러난 외벽, 바퀴벌레가 함께 살던 방도 내겐 모험 같은 순간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사는 내게 사람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편견이 잘 생기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사람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그렇구나’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부모님은 무능력한 당신들을 원망하진 않을지 불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호기심 많은 성질 때문인지 수많은 이사는 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쿠션이 넓은 인간으로 키운 것이다. 안 좋은 상황을 맞닥뜨리길 때마다 다짐한다. 새롭게 이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나는 이 상황으로 잠시 이사 온 것이라고.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