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접어둔 과거가 다정하게 안아주어 그것은 사라졌다
과거 한 장을 반듯이 접어 놓았다
정돈되지 않은 사랑의 이유는 지우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를 추신으로 달아둔 채
일기인 척 모른 척 다이렉트 메시지인듯
봉투 안으로 보내 놓는다
아무도 받지 않는 편지를 쓰면
나 자신이 편지의 속도로 읽힌다
받는 사람이 없어 편안하게 담아둔 말들
읽을 때마다 그곳에 묻어 있는 내가 없어진다
아쉽지 않으니까
진심으로 다정한 내가 태어난다
접어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듯이
접어둔 편지는 누구에게도 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가닿는다고 해도
누구에게 썼는지 모른다
접어둔 과거가 다정하게 안아주어
그것은 사라졌다
갈수록 손글씨를 쓰는 시간이 없어진다. 그 말은 생각하는 시간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천천히, 손글씨의 속도로 나 자신을 헤아리는 생각이 사라진다. 하루의 일기를 한 바닥, 두 바닥을 넘치게 꽉 채워 쓰던 어릴 때부터 난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했다. 말로 다 하지 못해 아쉬운 말, 입 밖으로 꺼내면 부끄러운 말, 반드시 글자로 남겨 놓고 싶은 말… 다양한 말을 손으로 꾹꾹 담아 소중히 접어 전달하는 모든 편지의 과정이 좋았다.
성급한 성격에 말도 빠르고 대화 속에서 놓치는 게 많아서 그런가? 편지를 쓰면 유독 내 속도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말이나 키보드로는 따라갈 수 없는 내 안의 진짜 생각이 떠오른다. 느려지는 만큼 생각에도 밀도가 생기는 건지, 내가 쓴 편지를 다시 읽을 때마다 ‘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편지를 쓰면서 상대를 더 사랑하게 된다. 편지를 쓰는 동안 그 사람을 더 천천히 보게 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대로 정돈되지 않는 과거의 한 사람을 떠올리며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본 적도 있다. 어차피 가닿지 않을 테지만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그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내 마음도 같이 내려놓게 됐다. 20대 중반쯤이었나 문득문득 우울한 감정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 여러 편지를 쓰다가 원인을 찾았다. '나 아직 그 사람을 못 놓았구나'. 천천히 돌아본 내 진심을 눌러쓰자, 무언가 풀린 기분이 들었다. 묶여 있던 말들이 쏟아진 느낌.
이제 놓지 못할 관계도 없고,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도 사라지니 손글씨를 보낼 사람도 줄어든다. 우리가 문자나 카카오톡, 댓글이나 DM으로 마음먹고 쓰는 글들 모두가 편지보다 가볍고 쓸모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겠지만, 곳곳에 망설임이 묻어 있는 편지와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내가 편지를 쓴다면 누구에게 쓸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편지의 속도로 들어가는 것이겠지. 올해는 편지 한 장을 꼭 써보고 싶다.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