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딴짓을 즐기려면
버스 창밖이 넉넉해야지
지나치는 배경들은
아쉬운듯 나를 바라보네
한가로운 구간일수록
편안해지는 풍경
나의 기분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덜컹거리는 기분은
제 멋대로 멈춰서고 달리고
지금은 좋은 시간이니까
잘 살자
좋은 건
드문드문인데 잘 살 수 있을까?
창문은 모르겠다고
활짝 열려버리고
내 의문투성이의 삶들은
우르르
내려버리고
그대로 풍경이 되어버려서는
우당탕탕
달아나 버리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며
잘 좀 살아
라며 정류장을 지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기 좋은 시간은 오후 2시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피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거리에 딴짓이 많은 시간이다. 한가로운 버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은 서울이 최고다.
내가 좋아하는 구간은 종로 부근이다. 시청과 광화문, 종각, 탑골 공원, 을지로, 드문드문 보이는 청계천, 명동, 충무로, 대학로까지… 종로는 정말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종로를 가로지르는 버스만 타면 서울에 처음 상경한 사람처럼 창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학 시절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종로를 뺑뺑 돌아가는 버스를 골라 타곤 했다. 교양과 미숙이 공존하는 풍경과 한 정거장 사이에 세대와 문화가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는 건 버스가 제공하는 생동감이다.
버스가 멈춰서고 사람을 태우고, 다시 내려주고, 또 달리고.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이나 도보로는 느낄 수 없는 느린 생동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다만 이런 것들을 느끼려면 내가 딴짓하는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 아쉬움이 오히려 버스의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하며 다니는 지금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만 날씨와 계절에 따라 버스 창가에서 풍경을 바라보던 시간은 조금 그립다. 지금도 버스를 타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버스 창문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 배경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던 나의 감수성도 그대로일까? 버스는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딴짓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탄 기분으로 살자. 내가 지금 생동감을 느끼는 곳에 창문을 만들어주면서.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