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날씨는
혼자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혼자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면서
일상을 우주로 느끼게 하는 질문들을 내려주고
질문들이 써내려가는 상상력으로
아마도 바닷속에서 많은 글이 헤엄치고 있을 듯
가끔 바람 불어 나눠주는 날씨들
우리 누군가에게 물들고
질문으로 쌓이는 단어와 영감의 말들
각자만의 세계에서 감수성을 빚고
쨍쨍하게 떨어지는 생각들
저마다의 날씨들
12년 동안 아이들과 그림책 만드는 일을 해왔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거나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려서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 내가 하는 일은 질문하고 이야기를 끌어내며 끊임없이 관심을 끌 만한 말들로 영감과 글감을 던져주는 일도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다면 순서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이 수업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 컨디션이나 성격, 스타일에 맞춰서 순간순간 필요한 주제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동시집, 에세이집 같은 걸 만드는 친구들에게는 주제 카테고리를 던져주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10년 넘게 누구에게나 먹히는 마법의 주제가 있다.
바로 날씨다. 좋아하는 날씨, 싫어하는 날씨, 기억에 남는 날씨, 원하는 날씨, 우주의 날씨, 원시 시대의 날씨, 바닷속의 날씨 등등… 날씨는 어떤 상황에 붙여 놔도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단어가 붙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닌 것 같다. 날씨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감수성이 드러난다.
굉장히 장난기 많고 말도 많은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비 오는 흐린 날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외동이라서 “집에 혼자 있을 때 비 오는 걸 보면 자신이 솔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떤 7살 여자아이는 눈이 쌓이는 걸 날씨라고 느낀다고 했고, 5학년 여자아이는 가을 쨍쨍한 날씨에 낙엽이 물드는 걸 보고 ”마음이 하얗게 천천히 떨어진다“라고 썼다.
나는 좋아하는 날씨를 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날씨의 세계를 무한으로 확장해 낸다. 아이들이 무슨 책을 만들지, 어떤 글을 쓸지, 다음 장면을 뭐로 할지 고민할 때 나는 날씨라는 무기를 꺼내 든다. 어떤 날씨가 좋아? 그곳의 날씨는 어땠을까? 끔찍하게 싫어하는 날씨가 있니?
질문을 받는 아이들과 내가 함께 느끼는 날씨는 아마도 일상일 것이다. 우리가 공동으로 나누고 또 누리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일상.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