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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류민정 Sep 22. 2024

취향은 재생 버튼과 같다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플레이스트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발랄이나 쓸쓸을 수집하던 기분으로

그때그때 다음 취향을 찾는 나

취향은 재생 버튼과 같다

언제든지 과거를 편리하게 틀 수 있어 

때와 시와 공간을 담은 나의 재생목록

흘러나오는 시간을 듣는다

반복하는 마음을 지나가는 계절로 여기며

소중하게 수집하는 중

아쉬움은 마지막 곡으로 여기며 영원히 무음으로 재생 중



나는 음악 취향이 잡식이라 그때그때 듣고 싶은 걸 듣는 편이다. 요즘은 알고리즘을 통해 한 곡만 재생해 놓아도 비슷한 취향의 노래가 흘러나와 잡식주의자인 나에게는 아주 편리하고 재밌다. 알고리즘 시스템을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곡, 한 곡 내가 반복해서 듣고 싶은 노래를 소중하게 담아 놓던 플레이리스트가 그립기도 하다. 


Y2K가 유행하면서 CD를 굽거나 밤새워 엄선한 음악 파일을 MP3에 넣고 다니던 때가 낭만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를 생각보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타이틀 곡만 듣고 싶어도 수록곡까지 반드시 들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고, 난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파일을 공유하는 다운로드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곤 했는데 잘못 다운받으면 제목과 딴판인 음악이 재생되기도 했다. CD나 MP3에 노래 하나만 잘못 들어가도 내 플레이리스트가 훼손되는 것 같아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됐을 때도 나는 음악 앱 안에 나름대로 나만의 비공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곤 했다.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은 주로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삼월], [삼월 다음], [가을로 가는 중], [5월 중간], [추울 때] 등… 때와 시를 제목으로 정해두면 나중에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찾았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삼월엔 겨울만큼 춥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작년에는 제법 가볍고 발랄했구나‘ 혹은 ’이때 여름은 참 쓸쓸한 생각을 많이 했지‘ 이런 식으로 나의 때를 성찰할 수 있었다. 


내가 수집하던 음악을 살펴보니 주로 OST다. 드라마 음악이나 영화 음악에는 서사가 담긴다. 주인공의 얼굴, 잊지 못할 대사, 마치 내가 가본 듯한 장소와 공간, 캐릭터의 물건, 아쉬웠던 결말…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빠져 있던 나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계절이나 시간이 적혀 있는 걸 보며 그것이 나만의 OST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월] 안에 담긴 노래들은 지나온 삼월에 살던 나의 주제곡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셈인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버린 지금도 습관처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좀 귀찮은 버릇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다시 보니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매년, 매달, 매일 기분을 까먹어버리곤 하는 스스로에게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과거의 내가 틀어 놓는 나의 OST일 테니까.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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