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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Mar 26. 2022

나의 업業을 인정하자

선생님이라는 정체성에 관하여

솔직히 적겠다. 이 글은 일종의 반성문이 될 것 같다. 의미 부여하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를 향한 반성문이자, 막연한 목표만 세운 채 게으르던 바람에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반성문.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갑작스럽게 학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는 늘 학원 일을 ‘서브 잡’이라고 치부해왔다.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고,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한눈을 팔았다. 마치 원래 할 일을 내팽개치고 온 사람처럼, 호시탐탐 다른 일을 찾아 헤맸다.


대학 졸업 후 내 머릿속 한 구석에는 ‘등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다. 교수님과 동기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사회로 나왔으니, 어떻게 해서든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난 보란 듯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높은 자리에 오르겠노라고 오기를 부렸다. 제대로 된 노력을 하기보다 회피를 선택해 놓고, 난 혼자 만들어 놓은 강박을 지키기 위해 방황했다. 누구도 시킨 적 없고, 아무도 바란 적 없는, 심지어 진짜 내가 원하는지도 모를 목표가 내 무의식을 지배했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내가 있는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면서 누군가를 조금이나마 성장시키고 나 자신도 풍요로워지는 모든 과정을 내 인생의 ‘서브’로 밀어 두고, 보이지 않는 꿈을 찾으려고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도통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갈팡질팡했다.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캄캄한 시간이었다. 틈틈이 시를 쓰고 이런저런 공모전에 투고도 해보면서 번번이 실패했고, 먼저 등단한 친구들에게 막연한 위로를 받으며 버텼다. 아주 잠깐 4대 보험이 되는 온전한 직장인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결국 난 도돌이표처럼 학원으로 돌아왔다. 희한하게도 내가 ‘나의 일’을 찾는 데에 실패하면 할수록 내 ‘서브 잡’은 더욱 견고해졌고, 아이들과 만드는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쌓여갔다.


결론적으로 어딘가에 두고 왔을 거라 굳게 믿었던 ‘진짜 내가 해야 할 일’ 따위는 없었다. 2013년 3월부터 2022년인 현재까지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나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 사이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쭉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어느 것 하나 진심으로 절실한 것 없이 나는 끊임없이 도망칠 궁리만 했고, 어느새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원 선생님이라는 업을 쌓아 온 것이다. 


이성복 시인은 시론서 <극지의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물이나 사건이 제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은 반드시 와요. 그걸 믿어야 해요. 그러나 끝까지 지켜봤는데도 그 순간이 안 올 수도 있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도 어떻든 그렇게 믿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시에 관한 말이었지만, 난 나 자신에게 저 문장들을 대입해보았다. 내가 그렇게 찾으려고 애썼던 ‘나의 일’의 “본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일이 대체 뭔가? 등단하는 일이 정녕 중요한가? 단정한 옷을 입고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인가? 그렇게 서서히 굳게 믿어 왔던 강박이 깨지고 나자 학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 선생님이야말로 진짜 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비로소 나의 일이 선명해졌다.


학원 선생님이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 관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야기 선생님 혹은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술 선생님이나 만두 샘이 되기도 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한 곳에서 오래 일한다”며 감탄할 적마다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부심도 생겼다. 그래, 나 아이들과 이만큼 만나왔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구나.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됐다.


막연한 꿈이나 목표들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게 ‘서브 잡’이라는 건 없을 것 같다. 동시에 여러 가지 업을 가질지언정 어느 하나 내 것이 아닌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내가 가진 강박은 진심으로 좋은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지는 껍데기를 갖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이제 ‘나의 일’은
아주 훌륭한 선생님은 아닐지라도,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서 아주 찰나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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