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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Nov 23. 2022

돈 되는 글에 관하여

돈 되는 게 뭐 어때서! 마인드 키우기

그쪽은  되는  아니면  .”



 나이 29.



서른을 앞두고 타로니, 신점이니, 사주니 여기저기 운에 기대어  미래를 점쳐 보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수소문 끝에 타로와 신점을 함께 봐서 용하다는 아저씨를 찾아가 나는 어떤 작가가 될까를 물었다. 그는 나에게 ‘ 되는 글만 쓰게  것이다’라고 말했다.



 등단을 하고 싶었다. 문예창작학과를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졸업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목표는 항상 언젠가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데뷔하는 것이었다. 그건 누가 뭐래도 정해진 순서였고,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점을 보러 갔을 때도  ‘반드시 등단을 하면서 30대를 맞이할 거야!’라는 굳은 의지로 똘똘 뭉쳐있었다.



아저씨의 말은 나의 다짐을 간단하게 꺾어버렸다. 자존심이 상해 아무렇지 않은  “왜요?” 하고 물었는데, 아저씨가 여유롭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하는 .



가만히 앉아서 글이 나올 수가 없어. 이게 나와야 ~”



 제스처가 어찌나 천박해 보이던지!  대체 어떤 글을 쓰게 된다는 말일까. ‘ 되는 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에는 그랬다.



말도  .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이야.   작품을 쓰는 작가가  거거든?’



그렇지만 소설만 쓰면 묘사만 서너 장을 해내어 ‘노잼 되어버리고, 시만 쓰면 ‘참신하지만 난해하다 평만 들었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며 자신감은 다시 바닥을 쳤다.



진짜  작가가  팔자가 아닌 걸까.



  머릿속에 ‘등단해야 한다 강박이 자리 잡았는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학 졸업   원래 대학원 진학을 하기로  있었다. 교수님과 동기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토익 점수가 졸업 점수에 미치지 못했고, 이렇다  의욕도 없어 약속을 저버리고 말았다. 그저 철이 없었고 무엇이든  줄로만 알았던 막무가내 졸업예정자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친한 선배의 손에 이끌려 ‘어쩌다 보니막내작가 일을 하게 됐고 어영부영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의 성공이란 보란 듯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출근만 있고 퇴근은 없는 불규칙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송작가를 그만둔 뒤에는 뜬금없이 학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아르바이트라도 구하자는 심정으로 직업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관심 키워드 속에서 나만의 알고리즘에 걸려든 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학원이 아닌 출판사로 오해하고 이력서를 넣었다. 어이없게도 면접을 보던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알았고,  어처구니없게도 덜컥 합격해버렸다. 그때가 26살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나는  학원 일을 ‘서브 이라고 치부해왔다. 진짜 내가 해야  일을 하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고,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여겼다. 이상한 점은 돈벌이를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벌이는  구할  있는 거로만 생각했고,  틈만 나면 한눈을 팔았다. 마치 원래  일을 내팽개치고  사람처럼, 호시탐탐 다른 일을 찾아 헤맸다. 그것이 바로 그놈의 ‘등단’, ‘글을 써야 한다 .



제대로  노력을 하기보다 회피를 선택해 놓고,  혼자 만들어 놓은 강박을 지키기 위해 방황했다. 누구도 시킨  없고, 아무도 바란  없는, 심지어 진짜 내가 원하는지도 모를 목표가  무의식을 지배했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내가 있는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대체 누가 나한테 등단하라고 떠밀고 있었나?  부모님조차 강요한  없었던 작가라는  강박, 등단이라는 굴레에서 허우적 대느라 나는 정작 가장 오랫동안  담고 있던  진짜 ‘에는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학원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어갈 무렵 점을 봤던  같다. 그땐 학원을 잠시 그만두고 사보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다가 다시 퇴사를  뒤였다. 지금도 여전히 ‘먹고살 궁리 멈추지 않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 찾아 삼만리였다. 우연인지 점을 보고  , 나는 회사에서의 인연으로 몇몇 취재 원고 일을 받아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있게 됐다. 나의 ‘ 되는 글쓰기 시작점이다. 이렇게 보면  아저씨가 용하긴 용하다 싶다. 그로부터 5년은 내가  되는 글이 아니면 절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성장기였으니까.



처음에는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다이어트 잡지에 신상 다이어트 제품을 소개하는 칼럼을 맡았다. 경기도권 중소기업 사장님들만 20명을 만나 인터뷰하는 책을 통째로 맡기도 했고, 문화재단 잡지에서 재단 소속 음악 감독과 단원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농업 잡지에서는 농업인을 취재하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도 했다.  ,  달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면서 차츰 일도 많아졌다. 그렇게 연차가 쌓이면서 난 정말 유명한 사람부터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인터뷰이들을 다양하게 만나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이었지만,  태어나서 가장 문학적이지 않고 직관적인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외면해왔던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난 돈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되는 글이란 뭘까.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 목적이 있는 . 목적성과 방향성이 분명한 . 그러니까 지면의 성격과 대상이 명확한 글이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는 . 비슷한 맥락이지만, 취향이나 재미, 특성이 뚜렷해서 많은 이들에게 흥미가 느껴져야 하는 . 결국 ‘꿀잼 .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난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했다.



‘왜? 왜 하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이어져 있다는 마음이 들고 싶어서였다. 파워 E의 성향을 지닌 나에게 글이란 혼잣말이 아닌 남들이 반드시 읽어줘야 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이다. 난 세상에 할 말이 많은 사람이고, 그걸 노래나 음악, 춤으로 할 수 없으므로 글로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결국 돌아 돌아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된 지금 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 말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돈이 많이 되는 글도 물론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10년 넘게 걸렸다는 점이 참 재밌다. 난 작가란 무릇 골방에 틀어박혀 신에게 구걸하여 얻은 자신만의 혼잣말을 하면 그에 감응한 독자들에게 환호 받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환상을 환상이라고 인정하고 내 글을 사랑하기까지 나를 다듬어준 건 학원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든 아이들이고, 인터뷰를 해오며 만난 사람, 세상이다. 이제 그들에 대해 차근차근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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