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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Nov 30. 2022

‘맞이’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

故 송해 선생님 인터뷰

2020년 8월, 인터뷰이 대상이 ‘송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대보다는 긴장부터 됐다. 기업 사보나 웹진을 주로 진행해온 내가 만난 인터뷰이 중 가장 유명인이기도 했고, 이미 나이 90을 훌쩍 넘기셔서 내겐 너무 ‘선생님’이지 않은가. 또, 방송인 ‘송해’에 관하여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일요일 낮마다 TV를 통해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던 국민 MC라는 것 정도였다. 어렵게 잡은 인터뷰라고 들었고 나 또한 합류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매체였기 때문에 엄청난 긴장 상태였지만, 그래도 ‘연예인’을 만난다는 설렘을 가진 채 종로 사무실로 향했다.



송해 선생님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에너지’였다. 먼저 환한 하와이안 스타일의 셔츠를 걸친 모습에 놀랐고, 점잖은 걸음걸이였지만 목소리와 눈빛에서 풍기는 생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잎이 커다란 난초로 가득 채워진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많은 연예인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방송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느끼는 것이 그들은 눈빛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선생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여느 젊은 사람들과 비할 데가 없었다. 오히려 깊이와 무게는 더욱 무겁고 진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바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전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태산같이 궁금해요. 앞으로는 어딜 가게 될까 기대되고요.”


9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인간이 세상에 가지게 될 호기심이란 대체 뭘까. 고작 30년 남짓 살아온 나조차 이런 우매한 질문을 던지는데, 선생님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니 송해 선생님이 하는 모든 말에는 나이 든 사람의 노곤함이나 빤함이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만난 사람의 수와 세월만큼 긴 시간을 무대에서 보낸 그에게는 ‘최장수 방송인’, ‘일요일의 남자’, ‘무대 장인’ 등의 수식어가 붙었지만, 정작 당신은 “누가 어떻게 보든 그냥 나는 무대 위에서 딴따라 하는 거예요”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대체 어떻게 그리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도 뜻밖에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전문가를 ‘쟁이’라고 했잖아요. 우리나라에는 장인 정신을 지닌 직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많았어요. 그에 관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옛날에 강화도에서 한 출연진이 자신의 장인이 공구를 만드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대장장이라고 부른다고 속상해하면서 ‘농기구 공장 공장장’이라고 불러 달라며 호소하더라고요. ‘농기구 공장 공장장’ 발음이 잘 안돼서 한바탕 웃으면서 방송이 나갔는데 그 뒤로 그분의 장인은 공장장으로 불렸을 거예요.

저도 옛날에는 ‘딴따라’라고 불렸어요. ‘딴따라’의 어원은 악기 소리를 영어로 ‘tantara’라고 하는 데에서 왔는데요. 그걸 ‘띤따라’ ‘탄타라’ 라고 부르다가 ‘딴따라’가 된 거죠. 2018년에 제 직업을 비하한 단어를 이용해 노래를 만들었어요. 제목이 <딴따라>. 노랠 만든 이유 중 하나가 경시 풍조를 없애서 싶어서였거든요. 가끔 노래자랑에서 제 노래인 ‘딴따라’를 부르면 객석에 나이 든 사람들은 괜히 미안해해요. 딴따라 무시했던 게 미안했던 모양이에요.

전국노래자랑에는 수많은 직업이 나왔어요. 제 직업도 그렇고, 주목받지 않았던 직업들이 편견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죠. 왜 이 자리에 아직도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장인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가 어떻게 보든 그냥 나는 무대 위에서 딴따라 하는 거예요.”


전문가, 장인, 프로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장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 한 자리에서 꾸준히 ‘하다 보니까’ 그 모습이 된 것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를 단어로 하면 ‘자연 自然’ 이다. 자연은 어떠한가. 흙을 움켜쥐고, 온몸으로 햇살과 비바람을 맞으며 버텨낸다. 꼿꼿이 서기도 하지만, 부러지지 않기 위해 흔들리기도 한다. 나는 인터뷰 내내 송해 선생님의 자연스러움에 관해 생각했다.


“나는 ‘맞이하는 사람’이에요. 상대방이 결례가 있더라도 넘어가야 프로라고 생각하죠. 김장 김치를 갖다 대도 맛있게 우적우적 씹어요.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든요. 여름날 바닷가에서 촬영하면 회를 젓가락으로 입에 넣어 주기도 해요. 그럼 저는 얼떨결에 삼키지요. 땡볕에 성할 리가 없는 음식인데 단 한 번도 탈 난 적이 없어요. 대화에 도취되면 균도 다 도망가나 봐요. 산낙지 같은 게 얼굴에 다 붙고 난리가 난 저를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면 그게 또 좋아요.”


내가 인터뷰하고 글을 쓴 세월은 한 줌밖에 되지 않지만, 항상 새로운 사람과 짧은 만남이 많아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이 온다. 수십 년 동안 매주 새 인연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에너지에 관해 ‘나는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웃는 모습을 보니 나는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인터뷰를 하고 3년 뒤 송해 선생님은 떠났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그 단단한 말들이 가슴속에 남아 아직도 사람 때문에 지칠 땐 화려한 셔츠에 에너지가 충만했던 선생님을 떠올린다. 생의 찰나를 함께 한다는 것도 이렇게 깊은 일인데, 선생님에게 새겨진 찰나들은 얼마나 많았을지. 나에게 새겨질 찰나들은 얼마나 많을까. 나도 그들을 새롭게 맞이하며 살 수 있을까. 인터뷰는 내게 사람이 오고 가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나 또한 잘 맞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사람과 세상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맞이하는 사람으로.



강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풍악따라 걸어온 유랑의 길
바람 속에 청춘이 간다
인생이 이거라고 이거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나
아 오늘은 어디에서
임자 없는 내 노래를 불러보나
가진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

-송해, <딴따라>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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