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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07. 2024

12. 소소함이 간절한 순간은 반드시 올 거야

삶 좀 살아 본 사람들은 아는 그 순간에 대하여

12


우리는



그렇게 발리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갔다.

무려 발리에서,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니. 여행에서 돌아와 현생을 사는 지금은 이 말이 얼마나 환상적이고 달콤하게 들리는지 모른다. 지금의 나에게 소소한 일상은 일이며 사람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어느 이상 쌓여있는 것이다. 그러다 따끈하게 데워진 불고기 뚝배기 한 그릇에 '조금만 더 힘내볼까'하는 불씨가 살짝 살아나고 또 아침이 되면 좌절되기를 반복하는.




알고 있었다. 발리에서 그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머지않은 훗날 아주 간절하게 떠올리는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이 되어있을 거라는 걸. 그래서 최대한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서 멀어지려 노력했다. 대체 아무 걱정 없는 평화로운 삶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내가 발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는 몸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눈은 팅팅 부어도 그대로 다녔고 끈적한 바닷바람에 머리칼도 머리 안 감은 사람처럼 끈덕지게 되고, 옷도 정갈한 매무새보다는 흘러내리고 올라가서 그냥 마구잡이로 다녔다. 긴치마가 발에 차이면 무슨 봉투 동여매듯 끝단을 야무지게 틀어 올려 묶고 다녔다. 문화사대주의라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한국에서보다 유럽에서, 유럽에서보다 발리에서 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유럽은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다 예쁘다 해주는 느낌이라면 발리는 예쁘든지 말든지 다양하든지 말든지 아예 관심조차 없는 느낌이라 훨씬 자유로웠다. 마구잡이로 다녀도 상관없고 반대로 장난 아니게 예쁜 척을 하면 또 예쁘다 해주는 곳이다.





사람들이 참, 너그럽다. 마음에 여유가 넘친다. 점심을 먹으러 간 한 식당의 직원이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은 지금 굉장히 행복한 중이라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 없고, 벌이도 여유롭지 않지만 자기가 필요한 것은 다 있으며 주변에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있어 그 외의 것이 탐난 적 없으니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뭐든 자기만의 이유로 아주 단단한 행복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에게 그리 만족감이 높으니 자연스레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나 보다. 결국 세상을 살아갈 힘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게 맞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발리에서 뭔가 제대로 먹어보자 마음먹고 레스토랑엘 갔다. 예약까지 하고 간 그 식당에서 마치 동네친구 만난 듯 한국의 친구들을 만났다. 동해에서 서핑하다 만나게 된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최소 8시간을 비행해야만 올 수 있는 낯선 땅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그것도 '이게 웬일이야?' 하는 반응이 아니라 '어- 왔어? 저녁 먹으려고 왔구나?' 정도였다. 동해에서도 만날 때마다 참 마음 평화롭고 좋았던 분들이다.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끌고 이고 지고 가던 관계가 아닌 어느 정도의 선과 거리가 있는 분들.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자유롭고 나 다운 모습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디서 만나든, 내가 어떤 상황이었든 이분들은 만나는 순간은 선물 같다. 생각난 김에 안부연락 해봐야겠다. 그때 나에겐 어떠한 부담도 없었다. 말 한마디 더 해야 하나, 뭐라도 선물로 주문해드려야 하나, 이다음 일정을 같이 하겠냐고 제안이라도 해봐야 하나 하는 내 애정을 시험당할까 두려워 건네는 선의가 필요 없는 관계였다. 그런 걸로 재단당하지 않을걸 아니까. 정말 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발리에서 만난 또 한 명! 바로 요요.

처음에 지인의 지인 정도로 알게 된 친구인데, 수많은 모델들 중 고전미와 현대미가 공존하는 얼굴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때 친했던 친구가 그 친구와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며 그 친구를 깎아내렸고, 나는 그때 바보 멍텅구리 시절이라 내가 경험한 적도 없는 사람을 타인의 말에 근거해 불신해 버렸다. 그러나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신랑의 친구로 다시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마주한 이 친구는 누구보다 마음 순수하고 정의에 대한 강한 힘이 느껴지는 정말 곧고 순수한 친구였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진심이며 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큰 멋진 친구. 발리에 서핑을 하러 온 모양인데 점심이나 먹자고 만나니 피곤에 살짝 절여져 있었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던 요요. 덥고 습한 나라에서 그 열기를 잊게 하는 발리꽃처럼 활짝 이었다.





그 후에 신랑과 나는 숙소 한 번을 옮겼고, 그 숙소도 리셉셔니스트분들이 너무 좋았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 한국어 몇 단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직원과 나눈 언어교환. (서로 간단한 문장 알려주기) 인자하고 차분하게 웃으며 모든 필요를 채워주던 생각보다(?) 어린 메인 직원분. 이른 오후부터 열기가 식을 때까지의 우리 놀이터였던 수영장에서 눈인사를 나눈 모든 투숙객들까지 이곳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참 반짝였다.




거기서의 화룡점정은 역시나 우리 오빠. 개구쟁이처럼 이것저것에 호기심과 그에 대한 열의를 가지며 노는 것에도 진지하게 열심인 게 지켜보기 재밌었다. 섬세한 순간마다 나를 향해 오는 배려도 나를 마음 놓이게 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걱정과 근심들을 묵직하게 눌러주는 부드러운 힘이었다.



발리 여행 내내 우리는 [ 수영 - 브런치 - 바다 - 저녁 - 수영 ]을 반복했다. 중간중간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탐험 같은 산책도 끼워 넣었고. 행복하고 소소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소소하지만 절대 소소하지 않은 귀한 날들. 우리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한국에서는 또 '현실'이라는 것에 직면한다. 좀 더 알맹이로 말하자면 돈을 벌고 그 행위에서 그치지 않도록 '돈을 벌면서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세상에 입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뭐 그리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마 그리 살 것이다.







12.5


아차차.



발리 마지막 날.

거의 자정에 가까운 비행기 시간이라 오늘인지 내일인지 헷갈리지 않기 위해 체크를 했고, 다음날 밤 12시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의 출국 비행기가 뜨는 날은 그 날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 나면, 미리 우리의 비행일정을 공유 캘린더에 따로 적어두었는데 나는 날짜 체크를 오빠에게 부탁했고 오빠가 그 캘린더를 헷갈려 날짜를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나도 더블체크를 했어야 했고, 심지어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도 무슨 배짱이었는지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 이상 없다고 생각하고 그 전날 비 오는 밤을 낭만적으로 즐기며 달달한 디저트를 곁들여 즐겁게 마무리했다. 사태를 인식한 건 그다음 날 여유롭게 체크아웃을 마치고 직원들과 서로의 안녕을 빌며 헤어진 후였다.




호텔 바로 앞의 카페에서 오빠가 좋아하는 팬케이크와, 나의 페이보릿 과일 스무디볼을 먹던 중 애써 눌러두었던 나의 불안감이 튀어나왔다. 그제야 항공플랜 메일을 다시 읽어보며 우리의 비행기는 지난밤에 상공을 날아올랐단 것을 알게 되었다. 경직되며 말 그대로 머리가 멈추는 과정이 그대로 보이는 오빠였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한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오빠는 내가 물어봤을 때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확인했어도 되는 일이었기에 더 잘하고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결국은 그날 밤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어 스케줄을 변경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의 하루 숙박료와 항공편 변경에 따른 수수료가 비행기와 함께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항공수수료는 인당 40만 원 정도였던 것 같고, 일본 하루 숙박료는 20만 원 정도였으니 100만 원짜리 발리에서의 하루가 더 생긴 셈이다. 오빠가 속상해 죽어가지 않도록 하루를 최선을 다해 즐겁자 마음먹었다.




뭐 결국 아쉬운 마음 한편은 어쩔 수 없었지만, 웃긴 이야기감 하나 장착하고 한국을 갈 것이고 저렴하다는 은제품을 위한 쇼핑시간도 생겼다. 언제 또 오려나 싶었던 짱구 동네도 갔다. 기서 피로감을 풀기 위한 마사지도 풀로 받았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고젝(이동수단 콜 어플)을 사용할 수 없어 막막하던 차에 오빠 핸드폰도 배달음식이 안될 뿐 오토바이를 부르는 건 된다는 게 번뜩 떠올라 다행이었다.



와. 진짜.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스펙터클한 발리였다.

그다음은 일본이다. 일본도 지금으로서는 그리 극적인 상황이 생길 일이 없지만, 또 모르지 우리니까.

자, 가봅시다, 일본으로. 이제 기대되기에 이르렀다.





안녕 도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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