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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09. 2024

13. 나는 남 아픈 거 관심 없는데

낯선 도쿄에서 응급실까지 갔다니까요 ?!

13


여행자 보험 꼭 드세요




발리에서의 한 바탕 소동을 뒤로하고 도쿄에 도착했다. 교토와 오사카는 친척집처럼 익숙한데 반해 도쿄는 생전 처음이다. 여행은 나에게 '쉼'이라서 분주하게 뭔가 해야 하는 도시보다는 그저 자연 속에 파묻혀 유유자적하고자 했으니, 볼거리와 먹을거리 천국인 도심은 목적지에서 제외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신랑에게는 일본 하면 도쿄, 도쿄 하면 패션, 패션 하면 쇼핑이었다.



혼자만 즐기던 일본에서 벗어나 이제는 오빠와 함께 즐기는 일본여행이기에 새로운 곳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온 도쿄. 사진이나 영상에서 많이 봐 온터라 처음 오는 도시인데도 익숙했다. 조금 더 세련된 오사카 같달까? 한 가지 다른 것은 사람들의 패션이었다. 남녀 구분 없는 옷차림이 이색적이었다. 스코틀랜드도 아닌데 플리츠스커트를 입은 남자들이 어렵지 않게 보였다. '아, 역시 일본에서 패션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멀리 와있구나.'




일단 생각보다 바람도 많이 불고 너무 추웠다. 그래서 한 겨울만큼 꽁꽁 동여매고 일본에 일가견 있는 신랑의 가이드에 나들이를 나섰다. 그런데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하니 팔짝 뛸 노릇이었다. 복에 겨운 소리가 아니다.



오빠를 만나면서 느낀 건데 나는 생각보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면 남의 속내를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던가.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가령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내면 동의할 수도 있지만, 이견도 어렵지 않게 내는 편이고 내 의견이 관철되도록 깨나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나에게 전적인 결정권을 준다면? 와. 너무 어렵고 마음 불편하다. 나에게 오빠가 그렇다. 분명히 자기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기는 한데 그걸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쉽게 말하면 서로 열심히 자기주장하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론을 얻도록 잘 조율할 자신이 있는데, 자기 입장을 말하지 않는 상대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오빠는 늘 내가 좋으면 자긴 아무 상관없다고 하고 그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그래 그럼!' 하고 나의 만족만을 위해 의견을 낸다면 해결될 것 같지만 나라는 사람이 또 그렇게 생겨먹지는 못했다. 계속 신경 쓰이고 끝내 눈치보기에 이를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도 모르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딱 나였다. 내가 그런가 보다. '아무도 모르게 제일 예민한 사람.' 여기서 제일 힘든 건 상대방의 감정변화가 아주 세세한 그러데이션으로 보이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내게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람이 좋으면서 제일 시달리는 것도 사람으로부터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의 장점은 뭐다? 바로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우리 둘 단에게 만족스러운 곳을 가고 싶어. 아니면 최소 내가 좋아하는 곳 가면 그다음은 오빠가 좋아하는 곳을 간다던지.
나는 근아가 좋은 게 제일 좋은데? 일본 많이 와봐서 그래도 괜찮아, 나는.
아니 그래도 나를 위한 배려에서 나오는 만족 말고, 오빠 혼자 온다면 갈 법한 그런 곳 있을 거 아냐.
그러면 우리 각자 가보면 좋을 만한 곳을 정해 오고, 루트를 짜서 선별적으로 돌아보자.
좋아. 그래도 근아가 제일가보고 싶은 곳 먼저 이야기해봐.
사실 나는 일본에 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라서, 계획하는 게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그냥 발 닿는 대로 가도 좋아. 이것저것 찾아보고 계획 세우는 게 힘들어.
그러면.. 일단 이쪽에서 제일 볼 만한 건...
그리고 쇼핑은 근아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 쪽에 있으니까....
나는 여기 가보고 싶고...



이렇게 우리는 호텔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신랑이 큼직하게 짚어준 포인트를 따라가다가, 구글맵으로 주변을 휙 둘러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즉석으로 추가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번 여행은 이런 식으로 다니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료칸'. 우리는 료칸에 가기 위해 중간에 하루를 하코네유모토에서 보내기로 했다. 옛날 시대극에서 본 듯한 광경이 펼쳐지는 이곳이 너무 좋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배경일 것만 같은 광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이는 듯했다. 근데, 너무 추웠다. 유카타도 입고 다니며 기분을 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만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탓에 여유와는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추위에 유독 약한 우리라 몸 상할까 걱정되어 얼른 저녁만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퇴사 후 급격히 안 좋아진 컨디션으로 지쳐있는 오빠라 오빠의 상태가 더 걱정됐다. 입술은 파래지고 심하게 추워하며 덜덜 떠는 게 보였다. 얼른 들어가서 온천부터 하자.



숙소에 들어온 우리는 바로 히터를 켜고 몸을 녹이고자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주전부리도 먹고 커다란 전통창으로 보이는 바깥 경관을 구경하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보낸 20분여 남짓한 시간을 끝으로 오빤 이불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거실 테이블에 앉아 여러 가지 유튜브도 보고, 사색도 해보고, 속으로 오빠를 야속해하기도 했다. 너무 심심해서 나 혼자 공용 온천탕 가서 온천도 혼자 했다. 그러다 우리가 예약한 온천시간이 되어서야 조금은 뾰로통한 목소리로 오빠를 깨워 다시 온천탕으로 내려갔다. 무튼 그때부터 쭉 오빠는 '우리'보다는 추운 '본인'만을 생각하는 게 보였다. 춥고 피곤하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마음이 서운하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룻밤에 40만 원 가까이하는 곳, 이리도 낭만적이고 멋스러운 곳에서 나는 너무 심심하고 심심했다.



다시 원래의 숙소로 돌아오는 날. 오빠는 살짝 기력을 회복한 듯 보였다. 나도 그 전날의 서운한 마음은 잊기로 하고 새 날을 맞아 새로운 마음과 기분을 장착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도쿄의 남은 4일을 어떻게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살짝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로울 리 없는 우리의 여행.



그날 밤부터 오빠의 이마는 펄펄 끓기 시작했다. 열이 얼마나 났냐면 옆에 있는 내가 오빠 체온 때문에 더워서 땀이 날 정도였다. 걱정이 된 나는 호텔 로비에 연락해 체온게를 빌려왔다. 39.9도??????? 40도에 육박하는 숫자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일단 한국에서 챙겨 온 비상약 중에 해열제를 먹였고, 가이드대로 몇 시간을 지켜본 후 또 먹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다음 날이 되자 열이 좀 내리는 것 같아, 근처 큰 약국에 가서직접 상의를 한 다음 더 나은 약을 사 오기로 했다. 오는 길에 오빠가 좋아하는 맥도널드도 들러 뭐라도 먹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급한 마음에 지도도 잘못 봐서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40분을 걸어 도착한 약국. 모두가 친절해서 다행이었다. 오는 길에 서둘러 햄버거와 여러 가지 입맛 돋울 만한 것들을 사 왔고. 하지만 오빠는 약과 햄버거 한, 두 입 이외에 어떤 것도 먹지 않았다. 밤 새엔 다시 열이 올라 이마를 한 번 쓴 물수건도 똑같이 뜨거워졌다. 그게 금요일 밤이었다. 이제 날이 새면 주말이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의료 시스템이 어쩐지 전혀 알 수 없는 나라인 데다 주말이라니. 그런데 이만큼이나 아픈 신랑이라니!!!!!!!



일단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일본어와 번역기를 동원해, 호텔 지배인님께 구급차를 부탁했다. 나는 혹시 몰라 그전에 오빠가 먹은 약과 성분을 일본어로 번역해 두고, 어떤 주기로 얼마나 먹었는지도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오빠의 상태를 몇 번이나 재차 설명해아할지 모르니 그것도 따로 일본어로 적어두었다. 그 모든 준비를 마치니 휠체어를 가지고 우리 룸 앞에 찾아와 주신 구급대원분들. 구급차에 타고나니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호텔 앞에서 30분을 보냈다. 그 후 시내에 있는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오빠랑 친한 오라버니가 일본에 살고 계셔서 그분에게 언어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와. 일본 병원은 클래식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수기로 작성하고 모두들 나의 마음과 다르게 느긋하고 더블체크를 더블로 하는 급의 섬세함을 자랑했다. 오빠는 머리 받힘도 없는 휠체어에 앉아 힘들어했고 나는 뒤에서 오빠 머리라도 기댈 수 있게 서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게 1시간 반 가량을 대기했다. 코로나 검사와, 독감등의 검사를 마쳤고 결과는 모두 음성. 알 수 없는 독감 바이러스지만 전염성은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항생제 주사와 아스피린을 처방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도 차도가 없으면 그다음 날 다시 방문하여 진찰을 다시 받고 다른 방법을 간구해 보자고 하셨다. 이 대로라면 한국에 빨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독감이 유행이라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괴로울까. 속상하고 아픈 오빠가 불쌍했다. 상황이 아니라 오빠의 마음이 걱정됐고, 축나는 오빠의 몸이 애잔했다.



그렇게 고열에 시달린 지 4일째가 되니 차차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컨디션이 좋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입맛이 여전히 없어 먹는 것에 고민이 필요했지만 그만한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병원비는 120만 원이 나왔다. 그게 뭐 필요할까 하는 내 의견에도 아랑곳 않고 둘이 2만 원짜리 3주 여행자 보험을 든 오빠를 헹가레라도 해주고 싶었다. 이후 90%를 돌려받았으니까. 무튼 점점 몸이 회복되는 오빠를 보며 조금씩 마음이 놓였다. 몸이 회복되니 생각이란 게 가능해졌는지 오빠는 내게 미안해하기 시작했다. 같이 온 여행인데 본인 때문에 4일을 날렸으니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원했던 곳을 하나도 가보지 못해 아쉽다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둘 다 정신을 되찾으니 생각난 한 가지. 아마 오빠의 열이 펄펄 끓던 어느 밤 지진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도 강하게. 알고 보니 진도 6.5가 넘는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오빠가 아프니까 지진이고 뭐고 신경도 안 쓰였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이렇게 또 한국 돌아가면 이야기할 이야기감 하나 적립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오빠의 친구분을 만났다. 일본에 살면서 우리 결혼식에 오기 위해 비행기를 탄 오라버니였다. 너무 고마워서 가족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비행기 시간이 비교적 늦은 오후라 약 반나절 동안 최대한으로 즐기자 마음먹었다. 유명한 쇼핑센터도 가고, 맑은 도쿄의 날씨도 만끽했다. 틈틈이 오빠의 컨디션을 체크하며 적당히 쉬어주며 최대한 시간을 즐겼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오빠를 진짜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가 가장 중요하고 애달픈 사람인데 그 '나'라는 개념 안에 오빠가 있구나. 이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오빠까지가 포함되어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살짝 어깨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결혼하고 달라진 점 중에서 큰 것 하나가 추가되었다. '나'라는 개념의 확장이다. 타인을 내 몸처럼 아끼는 것으로의 확장. 사랑하는 오빠. 아프지 말자. 절대 나 죽기 전에 먼저 죽지도 말고. 그러면 나 진짜 못 산다- 그러니까 힘내서 건강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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