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그리고 디자이너의 고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 나온 삶을 편리하게 그리고 즐겁게 해 준 제품들을 수 없이 경험했다. 몇 가지 쉽게 떠오르는 것들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즐겼던 흑백 닌텐도와 각종 팩 게임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선물 받았던 컬러링을 지정할 수 있는 핸드폰과 소리바다에서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업로드했던 아이리버 MP3가 있다.
고등학교 땐, 아이팟과 아이폰의 대유행이었고 음악정리를 위해 아이튠즈를 특히나 많이 애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학교, 대학원을 지나 지금은 수없이 많은 서비스와 제품들이 다양한 미디움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사용하고 또 버리고 갈아타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나는, 제품들의 끝에 존재하는 사용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디지털 제품과 그 경험들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어있었다. 곧 2021년인 지금, 디자이너라는 잡 타이틀을 달고 일한 지 고작 3년 차이지만 왠지 모르게 요즘 들어 조금 더 먼 미래에 대한 걱정과 환상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매일매일 일에 치여 하루를 보낼 땐 정신없어 이런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도 갖지 못했던 나지만, 한 달가량의 휴가 동안, 다각도에서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나 자신을 재정비하며 잠시 숨을 골라 미래에 대한 설계를 조금은 시도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요새 흔히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은퇴를 하는 나이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오래 디자이너로써 일을 하거나 테크 필드에서 일을 하는 것이 바람이다. 며칠, 몇 달 그리고 심지어 몇 년 후 까지도 지금처럼 회사 일에 충실하며 그 경험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들보다 앞으로 빠르게 변화할 세상을 생각하면 무언가 그에 필요한 능력을 미리 갈고닦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된다.
오늘은 트렌드에 자주 등장하는 많은 옵션들 중, 내가 요새 깊이 생각하는 AR/VR 즉,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려고 한다.
주위에 많은 대기업들에서 AR/VR 쪽에 특화된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다양한 많은 전문성이 있는 인재들을 뽑는 것이 자주 보이고 있다. 분명, 엄청 옛날부터 존재했던 직책 들일 테지만 특히나 요새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페이스북에서는 AR/VR 제품을 디자인하는 Product Designer 뿐만 아니라 Product Design Prototyper라는 더 전문성 있는 hybrid 포지션도 보이기 시작했고 매달 새로운 인턴, 신입 또는 경력직 디자이너들이 입사하고 있다.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 AR 또는 VR 쪽에 뽑히는 디자이너들의 대부분은 3D나 산업디자인과 비슷한 경험이나 경력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Unity, Maya, Cinema4D 등의 툴들을 사용할 줄 알며 코딩을 하거나 리서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페이스북에서 2D > 3D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Transitioning to a Career in AR/VR Design). 그가 말하길, 배워야 할 지식과 툴은 우리가 평소에 웹/앱 서비스를 만들 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다양함으로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한다.
빅 테크 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트렌드에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요새 내가 관심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엔터테인먼트+소셜 네트워크를 융합한 가상 또는 증강현실과 메타버스 (metaverse)에 대한 토픽 또는 제품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한 페이스북에서 게이밍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쪽 분야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자연스레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에 유튜브에서 좋은 요약을 담은 영상을 하나 접했는데 꽤나 정확하고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추천해본다. 관심이 있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위에 영상 말고도 Metaverse AR/VR에 관한 많은 정보와 좋은 전망들을 관측하는 기사와 소식들이 자주 나오고 있으며 사용자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례들도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포켓몬 고, 포트 나이트 인게임 콘서트, 애니멀 크로싱, 마인크래프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리그 오브 레전드 KDA 그룹 등이 있으며 최근에 내가 접한 신기한 사례도 있다.
CodeMiko
이 영상을 보며 내내 입이 안 다물어졌는데, 이 여성은 스트리머로 센서가 부착된 슈트를 입고 가상 캐릭터로 둔갑해 방송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도가 첫 번째는 아니지만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한 가상세계의 하이퀄리티 디테일과 시청자들이 이 스트리머의 두 가지의 아이덴티티 (사람 + 아바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색 달랐다.
Roblox
코로나 때문에 급부상한 이 회사는 저 연령층에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만든 3D 세계에서 아바타로 활동하며 같이 어울리며 게임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심지어 사용자들은 이 게임에 출근하여 게임과 서비스를 만들어 돈을 벌기도 한다고 한다. 난 이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블라인드 앱에서 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주식 탭에서 상장 (IPO)하면 제일 사야 하는 주식에 추천되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Michael Sayman이라는 4Snaps란 앱으로 유명 해저 페이스북에 최연소 직원으로 스카우트되어 구글을 거친 인재가 최근에 Roblox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 관심 있게 지켜봤었다.
"하... 나도 배워야 하나... 할 줄 알아야 하나...?"
이 글을 읽는 다른 디자이너분들은 이 쯤되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몇 주 동안 이런 정보들을 찾고 접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꽉 차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테크 필드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써, 그리고 전문성과 스킬이 중요한 우리들의 밥그릇을 더 크고 가능성 있게 (경쟁력) 만들려면 남들보다는 차별화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디자인 프로세스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2D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그로스 해킹과 실험 그리고 제품 론칭을 반복한다. 이것은 분명 내가 해야 할 일이며 현실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연 5년, 10년, 20년이 지나서도 내가 디자이너로써 꾸준히 공급되는 뛰어난 디자인 인력들과 비교해서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나이를 먹어갈 Z세대들에게 익숙한 메타버스와 증강, 가상현실과 관련된 제품들을 위한 스킬들을 갈고닦아야 하는가? 기술이 발전되고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지금 내가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일까?
실제로 석사를 할 때 이미 이쪽으로 눈을 돌린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나도 솔직히 관심을 있었지만, 당장 취업이 먼저였기 때문에 관련 수업을 듣거나 추가적으로 툴을 배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신입을 뽑는 회사들이 많이 없었고 일자리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Product/UX Design 쪽보다 훨씬 적어서 그 친구들은 취업할 때 애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다르다. 우리 회사에서도 AR/VR 쪽으로 인턴과 신입을 대폭 늘려서 뽑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음.. 한마디로 뭔지 모르게 혼자 다급해졌다는 표현이 아마 맞을 것 같다. 나보다 앞선 사람들이 훨씬 많은 데다가 배워야 할 지식과 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가가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당장 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육아를 하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 수 있기 때문에도 마음은 다급해지고 있다. 마치 5년 후, AR/VR 비즈니스가 붐이 일으면 나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 늦어서 이직 또는 팀을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하루는 잠을 자지 못했다.
영화 마진콜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부하직원의 급한 전화를 받고 컴퓨터에 나오는 차트를 보는데 실무에서 멀리 떨어져서 경영을 하는 그에게는 차트를 보는 것보단 쉬운 말로 상황을 인지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실무 (IC - Individual Contributer) 일이 아닌 매니지먼트 트랙을 타면 딱히 툴을 공부하거나 코딩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있을 순 있지만, 적어도 내가 봤던 AR/VR 쪽의 Product Design Manager들은 대부분 직접 관련 실무를 했던 사람이거나 매니징을 하면서 실무를 같이 병행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듯, 나를 서포트해주는 매니저가 디자인 경험이 많고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조차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결론은 일단은 해보기로 했다. 현재까지는 혼자 배우고 만들어 본 것이 전혀 없지만 내가 몇 년 전, 혼자 디자인과 코딩을 배웠던 것처럼,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일단은 이미 이쪽 필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 동료들과 지인들에게서 필요한 정보들을 얻으며 온라인 강좌를 들으며 공부할 예정이다. 그와 동시에 툴을 하나씩 직접 써보며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만들면 더 빨리 배우겠지?). 꾸준히 Roblox와 같이 커져가는 기업들도 페이스북내의 오큘러스 VR 또는 AR 팀들도 커넥션을 미리 만들어보고 알아보며 내가 부족한 것은 어떤 것이고 플러스가 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를 알아볼 생각이다.
혼자 공부할 시간은 정말 많이 부족할 테지만 그래도 롱텀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단기간에 강제적으로 내가 이직을 하거나 새롭게 취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모를 만능의 디자이너로써의 추가적인 다른 스킬 셋을 픽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히 조금조금씩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현실세계에서는 내가 해야 하는 것에 충실하며 계속해서 흐름을 읽으며 기회를 엿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글을 쓰며 다짐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 미래에 대한 진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흔들릴 때마다 이 글을 다시 봐야겠다.
(혼자 다짐하며 컴퓨터를 닫는다.. 아니 다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