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할아버지와 함께한 한 달 (1)

by 스윗스윙


2018년 11월, 런던에서 쭉 지내던 우리는 남편의 새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기 위해 잉글랜드 북쪽에 집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국에서도 이사를 안 가고 한 집에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타지에서 이사를 하려니 만만치 않았지만 런던에서 두 번의 이사 경험을 발판 삼아 하루 이틀 부동산에서 뷰잉 (viewing) 하고 집을 잡아야지 하고, 호기롭게 회사 근처 에어비엔비를 일박 이일 예약했다.


날씨도 흐리고 우중충한 분위기에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설렘보다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삶에 걱정이 더 컸다. 마침 에어비엔비 주인 할아버지 존은 우리를 역까지 픽업 나왔고, 짐을 풀고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우리가 이 먼 곳까지 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부동산 중개인과 집을 뷰잉 하기로 예약한 곳의 위치를, 이곳에 오래 산 할아버지가 미리 구글맵으로 봐줬는데, 교통도 안 좋았지만, 알고 보니 마약상 옆집, 임대주택 등이었다 (정부나 시에서 보조해주는 임대주택은 영국에서 저소득층,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이라는 인식이 많아서 보통의 사람들은 그 동네에 사는 것을 꺼려한다. 한국에서 수도권, 지방, 강남, 강북 그 안에서 또 동네별로 나누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데, 이곳은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천천히 정착돼서 그런지 그런 사회적, 자본주의적 계층에 따라 동네가 나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백그라운드를 차분히 묻던 할아버지는, 너네는 외국인이고 프로페셔널이니까 원래 집을 계약하려는 동네보다는 조금 더 떨어진 옆 동네에 집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4-5개 뷰잉 예약한 것을 실제로 확인하고 당연히 바로 계약할 생각이었는데, 우리의 계획과 달라져서 멘붕이 왔다. 아마 그냥 계약했으면 큰일이 났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 살 집을 함부로 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동네의 집들을 뷰잉 하기엔, 우린 일박 이일 일정으로 이곳을 왔을 뿐이고... 추천해준 동네에서 출퇴근을 하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운전면허도 아직 발급이 안됐고... 그래서 차도 없고... 운전면허받기 전에 학생비자를 취업비자로 바꿔야 하는데 처리도 안됐고... 이 모든 걸 한 번에 처리하기엔 영국은 너무 느리고... 연말에 다가오니 요놈들 더 일을 안 할 것이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이 온갖 걱정에 불안이 겹쳐서, 그날 밤은 고민과 걱정으로 잠도 한숨 못 잤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3월 정도까지는 에어비엔비도 비수기이니 할아버지 집에서 그때까지 지내도 좋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 집에 지내면서 앞으로 살 집을 천천히 잘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너무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살아왔던 탓일까. '할아버지가 왜 이런 제안을 해주지, 이방인에게?'라고 생각하던 찰나 할아버지는 내 생각을 기가 막히게 눈치챘는지 말을 이었다. '나도 젊었을 때 타지에 가서 누군가에게 이런 호의를 받았어.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있는 거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한 번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호의는 고마웠지만 뭔가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주저하는 것을 또 바로 알아차렸는지 할아버지는 '너네가 불편하면 한 달에 200파운드 정도 내면 된다. 너네도 그럼 덜 불편하고, 나도 돈을 받는 거니까 부담을 느끼진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살면서 낯선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바쁘게 나 살기도 빠듯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런 제안을 한 적도 없지만, 받는 것은 더더욱 생각을 안 해봐서 머리가 멍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기브 앤 테이크일 텐데'라는 의심스러운 생각과 함께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겹쳤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런던의 집이 한 달 뒤에 계약이 끝나는 급박한 상황에서 딱히 해답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기분 좋게 받아들여보자' 그렇게 우리는 런던에서 2019년을 맞이하고 1월 1일 바로 이사하여 할아버지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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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0415_103821557.jpg 할아버지 집앞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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