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세의 할아버지는 저멀리 아일랜드해와 대서양이 보이는 작은 집에 혼자 살고 있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사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깔끔하게 살 수 있구나라고 기존 나의 편견을 깨 주었을 정도로 아주 깔끔하게 집을 구성해 놓았다. 회화와 조각을 좋아하셔서 집에 여러 회화화 조각상들이 미술관처럼 즐비해있었는데, 밤에 무심코 흉부 조각상을 보면 솔직히 무섭다. 수건도 색깔별로 층층이, 테이블 매트도 다림질까지 해서 층층이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스러울 정도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런던과 미국 호텔에서 일했다고 한다. 때문에, 간단한 음식을 내줄 때도 파인 다이닝처럼 식기와 집기류를 다 갖추어서 주신다. 정말 잘 대접받는 느낌이고, 임팩트가 있어서 나도 집에서 이렇게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런던에서 젊은 시절을 너무 즐겁게,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보냈다는 할아버지는 프레디 머큐리와도 아침을 종종 먹었던 사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런던에서 지냈던 우리 집 근처에서 살았었다는데, 80년대 당시 소중한 친구를 몇 잃었다는 할아버지는 성소수자였다. 할아버지의 깔끔한 집안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혼자 오랫동안 지냈던 탓인지,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여느 노인들처럼 할아버지는 정말 말이 많았다. 대화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친한 지인, 친구들까지 나중에는 척하면 알게 될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듣다가 지칠 때도 있었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가족들이 생기면 뭔가 성가신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말을 하셨지만, 그 편안함 속에 뭔가 외로움과 고독함도 느껴졌다. 뭐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꼈다. 밖에 나가서도 누군가와 계속 대화를 하고 싶어 하던 모습을 몇 번 보아서일까.
할아버지의 겨울 생활패턴은 정말 일정했다. 11시 30분 정도에 기상해서 늦은 밤 12시 정도에 잠드신다. 해가 일찍 지는 탓도 있지만, 겨울이라 '동면(hibernation)'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2층에서 지냈기 때문에 이런 다른 생활패턴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아침에는 주방까지 가는 길에 최대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일층으로 내려와서 조심조심 다녔다. 할아버지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어쨌든 얹혀사는 입장이라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집살이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내 집 마련의 꿈 이런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때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저녁은 보통 반반 나눠서 했다.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할아버지가 영국 음식이나 할아버지표 퓨전음식을 해주고, 절반 정도는 우리가 한국 음식을 해서 함께 먹었다. 저 머나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느 날 한 부부가 와서 한국 가정식을 해준다는 것에 할아버지도 흥미를 많이 느낀듯했다. 특히 김치 맛에 반해 버리셔서 레시피를 물어봤지만, 나도 잘 몰라서 대답은 못 해 드렸다. 물론, 우리도 언제 이렇게 정통 영국 음식들을 경험해 볼 수 있겠냐라는 생각에 즐겁게 먹었다. 그리고, 피시 앤 칩스보다 다양한 영국 전통 음식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생각보다 맛있는 영국 음식은 존재했다.
차가 없어서 아무 데도 못 가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기가 일상이었던 우리를 할아버지는 운전을 해서 근처 관광지를 데리고 다녔다. 때문에 내 블로그에 소개되어있는 여행지들은 굉장히 local 스러운 곳이 많다. 이사 갈 때 도움이 될만한 가구점, 생활용품점도 안내를 해주셔서 나중에 우리가 이사할 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사 갈 때는 푼돈이라도 아끼라고 큰 보울이나 테이블 매트 같은 소소한 것을 챙겨 보내주셨는데, 이곳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할아버지는 우리의 보호자였다. 아마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으면 정착하고 주변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베풀어준 것은 단순한 호의라기보다는, 돌봄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정말 너무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감사한 한 달이었다. 그리고 나와 국적 인종 배경 심지어 나이까지 확연히 다른 사람과 지내본 한 달이어서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게 받은 할아버지의 배려, 이곳에서 이런 인연을 만나서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다니, 참 세상 오래 살다 볼 일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받았던 만큼,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