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

by 스윗스윙

런던에서 지낼 때는 워낙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국제도시이다 보니, 사실 오리지널 영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가도 영어보다는 다른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과에는 그나마 좀 있었지만, 남편네 과에는 심지어 전형적인 백인의 영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영국인들에 대한 국민성이나 성향을 전혀 파악할 길이 없었다. 북쪽에 오다 보니 외국인보다는 머리가 붉은 전형적인 영국인을 비롯해 전형적인 로컬 영국인들을 제법 많이 만나게 됐는데, 내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성향.



첫째, 게으르다. 이건 영국인들도 많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자기네들은 게으르다고 스스로 시인하는 사람들이 꾀 있다. 그래서 언어 공부에도 게으르다 한다. 이곳에서는 2-3개국어 하는 것이 엄청 큰 메리트라나. 한국에서는 국제화 시대에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데, 영국인들은 대부분이 그냥 영어만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다 통하는 언어이니, 사람들이 더욱더 배울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참 속 편하게 산다. 여행을 가더라도 영어 잘 통하는 common wealth 국가가 50개에 압도적 G1 미국도 영어를 쓰니, 더더욱 필요성을 못 느끼나 보다. 조상들 덕을 잘 보는 세대다. 중동에서 느낀 석유 안나는 나라의 설움을 이곳에선 또 다르게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 게으른 생활방식이 사실 우리한테 조금 편할 때도 있다. 항상 어디를 가더라도 미리미리 줄 서기 싫어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데, 길을 나서고 보면 차도 없고 사람도 없다. 주말에도 점심때 지나서 느긋하게들 많이 움직인다. 우리랑 동선이 덜 겹쳐 오히려 러시아워를 피하는 뜻하지 않는 호재가 많다. 내가 한국에서 개미과는 아니었는데, 여기서 나를 보면 무척 부지런하고 빠릿한 개미와 같은 사람 같다.


둘째, 남성들이 더 물렁하다. 남녀 구분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결과로 보면 그런 경우가 좀 많아서 혼자 생각해 보았다. 물렁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처리 하다 만나는 남자들은 정말 하나같이 어설픈 느낌이다. 가뜩이나 영국 영어 특성상 말을 둘러 하는데, 남자들의 표현이 더 두루뭉술하다. 애매해서 솔직히 좀 답답하다. 생각은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남편 말론 남자 직원들은 눈앞에 문제만 해결하려는 반면에 여직원들이 좀 넓게 차근차근 진행하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나. 한국에서 저렇게 하면 상사나 선배 혹은 사회 어딘가에서 대차게 까여서 남녀 불문 저러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는 인권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니 그냥 그대로 쭉 산다. 어쨌든, 여성들이 오히려 시원시원하고 깔끔하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가 더 확실하다.

내가 8년 전 잠깐 있었던, 필리핀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모계사회였다. 여성들이 가장이 되어 나가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다닐 때 태국 프로젝트 하며 들은 것이지만, 그곳도 여성이 노동의 추체라서, 배관공, 용접공과 같은 거친 일도 하는 여자 숙련공이 많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사상이 바탕이 되어 남자가 아직까지 가장이라는 인식이 많은 반면, 동남아시아는 여자들이 가장이 많아서 신기했었는데, 영국은 또 다른 개념이다. 동아시아에 비해 남녀평등이 비교적 잘 이루어진 나라라 특정 성이 가장이라는 인식까지는 아닌데, 뭐라 해야 하지... 좀 특이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몇 가지 추측. 제3의 성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남성의 성향이 물렁해졌다. 영국 남자의 1/4은 게이라 하던데, 실제로도 체감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의 거의 1/4이 게이였다. 생각보다 너무 자주 마주쳐서 이제는 우리도 너무 당연하게 제3의 성으로 받아들인다. 보통 내가 본 게이들은 완벽주의에 정말 깔끔한 성향이었는데 이들을 빼고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일반 남성이 더 물렁하다 느끼는 것일 수도. 또 다른 추측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오래 왕위에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남편 필립의 외조를 오랫동안 바라본 국민들의 인식들이 바뀌었다? 혹은 마거릿 대처를 비롯해서, 지금 엄청 터지고 있는 테레사 메이까지 많은 여성 정치인들의 카리스마적 활동이 강한 여성들을 만든 것일까? 어쨌든 문득문득 내가 겪는 상황에, 이곳이 내가 아는 것과는 또다른 사회라는 것을 느낀다. 이해하려 하지만 아직도 말하다가 열불 나고 짜증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한남'위에 '영남'이 있다.


내가 느낀 영국인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을 가지고 늘 궁금해했다. 도대체 얘네는 어떻게 근현대 전쟁을 다 승리하고, 한 시대를 화려하게?잔인하게? 대영제국으로 만든 것이지... 이러한 성향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 보니 영국인은 일본인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한다. 뒤로 호박씨 까는 스타일이라고 했나. 저런 물렁함 속에 알고 보니 칼을 숨기고 있는 것 아니야? 그러고 보니 칼을 맞은 것 같기도하고. 쓸데 없는 걱정으로 주절거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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