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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pr 16. 2020

첫 마스크 착용기

3월 17일. 처음으로 회사에 마스크를 쓰고 갔다. 모두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지나가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느낌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두 명 보고 피식 웃기는 했으나, 냉소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니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나는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라 다행히 아침에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마스크를 벗고 커피 한 잔을 재빠르게 마셨다. 보리스 존슨이 70대 이상 4개월 칩거하라고 한 것과 마트에 냉동식품까지 동났다는 이야기로 애들이 아침부터 떠들어 댔지만, 나는 침이 튈까 봐 근처에 가지도 않고 평상시처럼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마스크 쓰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을 걸지 않았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덮고 있는 저 머리 검은 동양 여자 건들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앉아 일을 했다. 아마 회색 기운의 오로라가 내 주변을 덮었을 것이다. 칸틴에 사람이 없을 때만 들어가서 물을 먹었는데, 우연히 마주친 옆 팀 사람이 나에게 소심하게 말을 걸었다. ‘지난주에 나도 마스크 가지고 왔는데, 아무도 안 쓰길래 나도 못썼어...’ 이 사람 아마 내일부터 쓸 것 같다.


일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 구석구석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콜록콜록. 특히 내 뒤에 동료도 휴가 갔다 와서 계속 콜록댄다. 오렌지 마멀레이드 대회 금상 받은 걸 자랑하려고 다가오길래 몸을 얼른 돌려서 거리를 두었다. 내가 피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뭔지 모르게 주변의 콜록콜록 소리가 더 커진 기분이어서 뭔가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났다. 대부분 경각심이 없고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것에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약간 짜증을 냈더니 다른 동료가 ‘넌 그래도 마스크라도 썼잖아...’라고 말해서 더 이상 짜증을 낼 수 없었다. 서양에서는 마스크를 병에 걸린 사람이 쓰거나 더러운 환경에 있을 때 쓴다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은 다른 것 같다. 그렇게 침튀기게 수다 떨고 난리인데, 화장실에서 손은 엄청 빡빡 닦는다. 정부에서 지침이 손 잘 닦으라는 것이었으니 그거 하나 잘 지키고 있다.


모두가 조심하면 되는데, 재채기하거나 기침할 때 입을 소매로 가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건 위생관념을 떠나 매너가 없는 것이다. 런던이나 도시에서 동양인 혐오로 폭행일 당하는 일도 있다는데, 지금 나의 상태는 거의 서양인 혐오다. 자유주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계속 콜록 거리는 사람들에게 뭐라 할까 하다가 그냥 조용히 그들을 피하는 행동을 했더니 나중엔 눈치가 보였는지 기침 참는 소리를 냈다. ‘난 코로나 아니야, 그냥 감기야’라고 말은 하는데 검사도 안 해주는데 본인이 어찌 알까? 기침이 나오면 일단 집에 가서 쉬지, 다들 고집 하나들 대단하다. 


그렇게 기침을 참아가며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억지로 이어나가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 이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먼 나라 먼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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