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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Apr 16. 2020

조용한 이스터 Quiet Easter

원래의 계획대로 였다면 우리는 이번 이스터에 런던 영사관에 잠깐 가서 남편 여권을 새로 갱신하고, 투표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유로스타타고 파리에 가서 놀다 올 생각이었지만 완전 의미 없는 계획이 되었다. 유로스타 티켓을 2월쯤에 끊으니 마느니 했는데 정말 안 끊길 잘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된 이스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부활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사망자는 연속으로 하루 900명을 찍었고, 그래서 그런지 운동하러 밖에 나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스터 당일에는 마트도 문을 다 닫아서, 그나마 북적이던 마트 주변 도로도 차 한 대 없이 아주 고요했다. 마을에 사람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씩 사이렌 소리만 삐용삐용 거려서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응급환자일까, 신고받고 출동하는 경찰일까.

이스터 즈음 되면 온도도 적당히 올라가고 해는 쨍쨍해서 야외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는데 잉글랜드 남부와 다르게 이쪽은 계속 구름이 끼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어쨌든 다시 일주일 만에 우리는 산책을 나갔고 역시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새벽 즈음에 동네를 걸었다. 인적 없는 길을 걸으니 기분 참 이상했다. 너무 고요해서 마치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집에만 있어서 날짜 개념도 없었는데, 꽃망울과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니 아 봄이 오긴 했구나. 언제 심었는지 강을 따라 올해도 수선화를 잔뜩 심어놨다. 그냥 호기심에 수선화를 만져봤는데, 꽃잎이 다른 꽃과 다르게 단단하고 뻣뻣하다. 하얀 종이 같아서 영문명이 궁금해 검색해 봤더니 Paperwhite라고 한다. 이름 참 재미있다.

긴 산책은 아니었지만, 잠깐이나마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고 오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꽃들이 그 사이에 피어난 곳을 보니 뭔가 생기가 돋는 기분이라 오는 길에 마트에서 장미꽃을 한 다발 사 와서 집에다가 꽂아놨다. 집에도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주변에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지칠 만도 한 칩거 생활인데 나름 힐링과 여유를 만끽 중이다. 레이 달리오의 금융위기 템플릿을 아주 힘겹게 보기는 했으나 어쨌든 다 봤고, 이제는 하루에 한 권 정도의 책을 볼 수 있다. 락다운 하자마자 넷플릭스를 신청했는데, 그동안 보지 못한 한국 드라마 히트작을 몰아서 몰아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너무 길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기분이다. 온라인 쇼핑도 쏠쏠하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옷이나, 생활용품들이 코로나로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아서 온라인으로 폭탄세일을 엄청 하고 있다. 역시 이 나라에서는 원가 주고 사면 바보. 사려고 했던 물건을 정말 저렴하게 구매해서 또 다른 행복을 느낀다.


이번 주에 락다운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이제 정점을 찍었다고 완화 정책의 뉘앙스를 폴폴 내뿜는다. 영국 언론은 참 웃긴 게, 다른 나라일에는 그렇게 비판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척(?) 하면서 자국의 행보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긍정적이다. 브리핑을 듣거나 기사를 읽다 보면 벙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확실히 우리의 미래를 재고해 볼 만한 임팩트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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