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스윙 Jun 27. 2020

심심한 일상에 적응하는 삶


혹자로부터 이런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영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심심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비단 영국뿐 아니라 많은 유럽 문화권이 비슷할 것 같다. 심심함에 익숙해지는 삶. 한국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그 심심함에 대해 생각해봤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일까. 얘기 들어보면 한국도 워라벨이 엄청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퇴사한지 3년 반이 됐는데, 그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나 보다. 영국에서는 보통 자기 할 일만 하고,  별도로 이들과 어울리는 시간 없이 후딱 집에 간다.  점심시간이 한국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있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얼른 집에 가서 딩굴거리거나 내 시간을 누린다. 내 시간이라고 해서 유별나게 보내는 것은 없다. 그래도 회사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TV도 좀 보고, 책도 좀 보고, 블로그에 글을 써본다거나 (사실 나도 여기 와서 블로그라는  것을 시작함), 멍 때린다거나, 차를 마시고, 베이킹도 하고, 요리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산책을 다니고, 소소한 대화도 많이 하고, 사색도 하고.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제법 다양한 활동을 (뜻하지 않게) 찾아서 한다. 

사실 심심한 또 다른 이유는 앞의 활동들과 연결되는데, 유흥거리가 딱히 없기도 하다.  친구가 이곳에 많은 것도 아니고, 노래방이나 영화관 같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지근한 맥주를 먹기 위해 펍에 가는 일은 더 드물다. 미술관, 박물관에 간다거나, 공연이 있으면 한두 번 예약을 해서 보는 정도다. 코로나 이전에는 근교로 여행을 자주 갈 수 있으니, 주로 여행을 다닌다. 여행, 관람, 쇼핑 정도 제외하면 정말 유흥거리가 크게 없다.  공원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들이 이해도 간다. 한국에서는 카페에 가서 혼자던 여럿이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카페 가는 빈도가 엄청 줄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내가 집을 벗어나 엉덩이 붙이고 앉아 무엇인가를 할  '공간'이 필요했던 반면 여기서는 그냥 널려있는 공원이나 산책길 벤치에 앉아있으면 되니까 굳이 카페를 안 찾게 된다. 화장실만 해결된다면 카페보다 더 오픈된 장소다.   환경이 여가를 바꾸나 보다. 

한국이 행복한 지옥이라면, 영국은 지루한 천국이라는 말이 와닿을 때가 있다. 다만 그 지루함과 심심함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오롯이 내 의지에 달려있다. 크게 뭘 하지 않아도 내 시간을 무엇인가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자체, 그 자체가 좋다.


Dolce far Niente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

-영화 <EAT, PRAY, LOVE>에 나오는 이탈리아 속담 중-


초반에는 이런 심심한 일상이 좀 낯설었다. 뭘 막 했는데도 저녁 7시고, 자기 전까지 뭐 하지 가만히 있기도 하고, 뭐라도 해야지 손해 볼 것 같지 않은데,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이렇게 살다가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어떤 대상에 뒤처질 것 같은지 딱히 그 기준도 비교 대상은 없다. 그냥 막연하게 혼자 뭔가 바빠야 할 것 같은 느낌들이었다. 빽빽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쉬면 안 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항상 바쁘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모습, 어쩌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점점 멀어지니 어떤 괴리감이 느껴졌나 보다. 


오카다 타다시의 <심리 조작의 비밀> 제2 원리에 따르면 뇌를 지치게 만들면 생각할 여유를 빼앗게 된다 한다. 지금에 와서  얻은 약간의 깨달음이 있다면, 안 바빠도 일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내가 서두른다고  크게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의 페이스대로 쭉 살면 된다, 바쁘면 바쁜 데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심심함은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의 가치와 원칙 그리고 취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요즘은 심심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삶을 향유(Savour) 한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막상 일을 다시 해야 한다니, 심심함에 대한  가치를와 그 행복을 갑자기 엄청 느끼게 돼서 쓰는 글.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이후의 삶, 게으름에 대한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