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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May 16. 2017

엄마처럼 맑고 순한, 순무 미역국

생일날 아침 나를 낳아준 엄마를 생각하며 


우리 딸, 오늘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었니? 엄마가 끓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매해 생일 아침이면 엄마는 잊지 않고 내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의 말보다 미역국 끓여 먹었냐는 질문이 늘 먼저였다. 미역국이 뭐라고 매번 손수 끓여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시는지. 젊었을 때는 그 마음이 와 닿지 않았다. “미역국 안 먹어도 돼 엄마. 이따가 친구들이랑 더 맛난 거 먹을 거야.” 끓이기 귀찮아서 안 끓였을 뿐인데. 생일날 미역국 못 먹은 딸이 맘에 걸려 안쓰러워하는 엄마가 언젠가부터 내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먹었다고 거짓말하는 게 낫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한 것이 항상 미덕은 아니었다. 


식구들 생일에 엄마는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미역을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뭉근한 불에 오래 끓인 엄마표 미역국은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속이 뜨끈하고 든든했다. 커다란 안락의자에 푹신하게 기댄 느낌처럼 안온했다. 느리고 긴 시간 동안 끓인 미역국 속으로 엄마의 사랑이 깊고 은근하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미역국을 워낙 좋아하는 식구들을 위해 엄마는 평소에도 미역국을 자주 끓였다. 고기 대신 황태나 우럭 또는 굴, 홍합, 조개 등을 넣어 시원한 맛이 좋았다. 미역국을 먹으면 미역 타래가 내 입안에서 조금씩 일렁이며 강릉바다 내음을 풀어놓는 것 같다. 다 같이 둘러앉아 미역국 먹던 때가 그립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맞이한 첫 생일날엔 저절로 눈물이 났다. 낳아줘서 고맙다고 엄마한테 미역국이라도 한 번 끓여드릴 걸. 후회는 미련스럽게도 늘 너무 늦게 찾아온다.



또다시 돌아온 생일날 아침, 엄마를 생각하며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이 탯줄 같아 보인다. 미역국은 나를 낳아준 엄마와 내가 평생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한 입 먹을 때마다 배꼽 부근이 아려온다.  




순무 미역국은 고기를 싫어하거나 해산물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미역국이다. 


* 재료 :

마른미역 20-30g,, 래디시 15개 정도, 참기름 1큰술, 들기름 1/2큰술, 멸치육수 5컵, 국간장 2큰술, 소금 1작은술.


* 만들기 :

미역은 불린 다음 먹기 좋게 자른다. 냄비를 중불에 달군 후 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볶는다. 뜨거운 육수 1컵을 붓고 같이 볶아준다. 육수 2컵을 더 넣어 볶다 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나머지 육수를 마저 붓고 20분가량 끓이면 미역 향이 우러나기 시작한다.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래디시를 4 등분하여 넣는다. 래디시가 투명해지면 파란 잎사귀를 넣고 1분 정도 더 끓인다. 파나 마늘은 넣지 않는다. 래디시가 없으면 대신 무를 넣어주면 된다. 


* 미역국 맛나게 끓이는 팁 : 육수를 차가운 상태로 붓지 말고 뜨겁게 데운 후 사용한다. 음식을 할 때, 불 조절도 중요하지만 물의 온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한꺼번에 육수를 다 붓지 말고 세 번 정도 나누어 끓이면 미역의 맛과 향이 더 잘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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