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고 싶을 때 가면 좋은 여행지
가보지 않은 나라를 여행하기 전 일정을 짜는 일은 얼마나 어설픈 도전인가. 역사가 깊고 오래된 유적이 많은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3개국의 일정 분배는 쉽지 않았다. 자유여행 루트는 여행정보와 미리 다녀온 블로거의 이야기를 토대로 짤 수밖에 없는데 현지에서 느끼는 만족도는 순전히 여행하는 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이 아니라면 나만의 취향도 있어야 한다.
요르단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쪽은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 정보가 차고 넘쳤지만 레바논은 여행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오래된 내전으로 몸살을 앓아왔기에 여행 위험지역으로 인식된 나라 레바논. 한글판 여행 가이드북은 아예 없고 배낭여행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론리 플래닛조차도 2008년판 이후 업데이트가 되어있지 않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중동지역을 폭넓게 다룬 2015년판 론리 플래닛 Middle East를 사서 탐독했다.
3년 전인가 중동 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지인은 레바논은 나라가 작아서 4-5일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레바논은 쉽게 맘먹고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기에 이번 기회에 충분히 시간을 안배하고 싶었다. 어쩌면 다시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10일을 잡았다. 지인 아들 결혼식 참석 일정까지 고려하여 대략 10일 정도면 웬만큼 둘러보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림도 없었다. 레바논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유산은 대충 훑어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에는 열흘은 턱없이 모자랐다.
레바논은 우리나라 경기도만 하다. 한 국가의 영토로 볼 때 작다면 작은 크기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작은 나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 무려 다섯 군데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뿐인가.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있어 가을부터 봄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산악지역은 여름에도 서늘해서 베이루트에 사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러 온다고 한다. 산악지역에서 차로 한시간만 달리면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스키를 타고나서 한 시간 후 바다수영이 가능한 곳이 레바논이다. 중동지역이 뜨거운 날씨에 모래사막으로 펼쳐져 있을 거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레바논은 가차 없이 깨 준다.
레바논 여행 루트를 짤 때 개인적으로 제일 맘에 둔 곳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카디샤 밸리(Qadisha Valley)였다. 험준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이 곳에는 오래된 수도원이 많으며 성경에도 나온다는 레바논 백향목 숲(The Forest of the Cedars of God)과 세계적인 명상가 칼릴 지브란의 고향 브샤레(Bshare)가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책이나 사진에서만 보고 듣던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생각을 하니 소풍 가기 전날 밤 아이처럼 들떴다.
이틀간 카디샤 밸리의 길 안내를 맡아줄 다니(Dany)를 따라 숙소를 나섰다. 마을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시작되었고 커브를 틀 때마다 펼쳐지는 절경에 과장 없는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길 한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손에 땀을 쥐었다.
쉽게 외워지지 않는 이름 카디샤 밸리(Qadisha Valley). 뜻을 알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름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Qadisha는 아람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아람어(Aramaic)는 고대 중동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공용어이며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이기도 하다. 카디샤 밸리는 ‘Holy Valley’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중동지역의 가장 오래된 기독교 수도 공동체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카디샤 강에 의해 나뉜 가파른 계곡에는 풍화작용으로 생겨났을 천연동굴이 수없이 많다. 해발 1천 미터 이상에 위치한 동굴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서 기독교 박해를 피해 온 수도사들과 수도 공동체를 위한 은신처로 제격이었을 것 같다.
카디샤 밸리의 랜드마크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수도원 마 리샤(Mar Lichaa). 수직 절벽을 벽 삼아 지어진 수도원 건물이 인상적이다. 이 수도원이 언제 세워졌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문헌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4세기라고 한다. 수도원 내에는 시리아어의 고어인 에스트란젤로 문자가 새겨진 검은색 돌판이 있는데 12세기 이전에 시리아의 수도사가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면 동굴과 이어진 천정이 있고 동굴 내에 기도실이 있다. 수도원 창문으로 내다본 풍경은 고요하게 아름다웠다. 동굴은 신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 같았다. 수도사나 은둔자적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기도와 수행을 하기에 카디샤 밸리 절벽에 나있는 동굴만큼 적합한 장소는 없었으리라.
수도원 밖에는 좁은 테라스 모양의 밭이 있다. 수도 공동체에서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올리브와 포도나무 그리고 곡식을 심어 자급자족을 해왔다.
카디샤 밸리에는 백개 이상의 천연동굴이 있다고 한다. 동굴과 잇거나 동굴을 더 파서 들어간 수도원과 기도실도 많다. 제한된 시간에 모든 수도원을 둘러볼 수는 없기에 민박 주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수도원 두 군데가 어디냐고. 짧은 망설임 끝에 그녀가 선택한 또 다른 수도원은 마 안토니오스 쿠자야(Mar Anthonios Qozhaya)였다.
마 리샤 수도원을 보고 난 후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달렸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셔터를 누르니 센스쟁이 다니(Dany)가 가끔 차를 세워주었다. 계곡 아래쪽에 마 리샤 수도원보다는 훨씬 큰 수도원이 나타났다.
이 수도원은 교회 예배당이 동굴과 이어져 있고 큰 수도원이라 그런지 수사들이 거주하는 건물도 있었다. 동굴 자체가 커다란 기도실인 곳이 있었는데 현지인 가족 여러 명이 기도를 하러 다녀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다니에게 이 수도원의 역사에 대해 묻고 있는데 검은 눈과 긴 수염이 인상적인 수사님이 다가오셨다.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카디샤 밸리에 기독교가 정착된 역사와 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셨다. 수사님의 눈은 어떤 동요도 없이 잔잔했고 동굴처럼 깊었다.
안토니오스 쿠자야 수도원이 유명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610년 중동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쇄기가 이 수도원에 있다. 당시에는 시리아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아랍어를 인쇄한 최초의 인쇄기라고 한다.
작은 나라 레바논의 정치와 종교는 매우 복잡해서 설명하기가 난감하다. 상식 정도로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것은 마로나이트(Maronites)이다. 레바논에서 인연을 맺은 몇몇 친구는 종교 얘기가 나왔을 때 자신들이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는 천주교보다는 개신교 신자를 먼저 떠올린다. 레바논에서는 크리스천 다음 이어지는 단어가 바로 마로나이트였다.
마로나이트(마론파)는 3세기경 시리아의 수도자였던 마론(Saint Maron)의 이름을 딴 기독교의 한 교파이다. 마론파는 예수가 인성과 신성 두 가지 본성을 가진 분이 아니라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본성만 가졌다는 단성론자였다. 이는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7세기 후반 레반트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자 마론파는 레바논 산맥으로 피했다. 십자군 전쟁 때 마론파는 이슬람에 맞서 십자군 측에 합류하였고, 오랫동안 로마교회와 관계가 소원했던 마론파는 십자군 전쟁의 기여를 인정받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마론파는 중동지역의 무슬림들로부터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고, 프랑스가 오스만튀르크 제국 내의 기독교 집단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거쳐 1943년 레바논은 독립을 하게 된다. 이때 인구의 51%를 차지했던 마론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다음으로 많은 이슬람 수니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는 협약이 맺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슬람교도가 급증하면서 마론파는 1/3 정도의 비율로 축소되었다. 마론파가 차지한 권력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불만이 커졌고 위기를 느낀 마론파는 이슬람교도에 대응할 민병대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긴장과 분쟁이 도화선이 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4세기경부터 수행과 은둔생활을 위해 험준한 카디샤 밸리에 정착한 마로나이트. 레바논은 역사적으로 기독교도가 많았지만 중동지역에서 기독교 중심국가로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높은 레바논 산맥에 위치한 카디샤 밸리 덕분이지 않을까. 성자(聖者)의 계곡을 찾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성스러워지는 듯하다. 암벽 동굴에 붙은 수도원에서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수사님들의 모습은 특정 종교의 믿음이 없는 여행자조차도 경건한 마음이 들어 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