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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지우 Jun 13. 2023

남을 것인가 vs 떠날 것인가


직장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른 출근 시간, 과도한 업무량, 불편한 인간관계 등등.

내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


회사 업무는 ‘what(무엇)’은 있지만 ‘why(왜)’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해야 할 일은 있지만 왜 하는지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각자가 자신만의 '왜'를 찾아야 하는데 여기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일을 오래 하기가 힘들다.


나는 해외에서 근무할 때 가장 의욕적으로 일을 했다.

법인을 세우고 설비를 채워 넣고,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모르는 건 배워가며 내 손으로 하나씩 이루는데 성취감을 느꼈다.

현지 회사가 자리 잡고 본사로 돌아오면서부터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9 to 6의 정해진 시간, 정해진 업무, 정해진 공간.

일을 찾아서 해 봤지만 어디까지나 내 영역에서만 가능했다.


소설가 장강명 님은 한 강연에서 직업은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릇 모양과 내 모양이 맞지 않으면 긴 시간 나를 구겨 넣어야 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아닌지는 '직업 안에서의 나'를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세세하게 기록에 남겨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을 것인가 VS 떠날 것인가


직업이 나를 담지 못한다면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사람마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조직에 머무는 것이 어울리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우위에 둔다면 언젠가 조직 밖을 나오게 된다.


물론 직업 가치관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나 성장 가능성, 수입 등 여러 가지 고려되는 요소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쉬움은 늘 있다. 남은 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사는 것뿐.


어릴 적 우린 의사도, 과학자도, 슈퍼 히어로도 될 수 있었고 세계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직업만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오늘은 건축가로 내일은 디자이너로 살 수는 없다.

(채용 조건이 없다면 N잡러도 가능하겠다)


실제로 우리는 평생 내가 탐구할 기회를 가진 것보다 많은 분야에 재능이 있지만 수많은 '실현 가능한 나'를 시험도 해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느 직업을 갖기로 결정할 때 설명되지 않는 찝찝한 기분은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늘 나 자신의 많은 부분이 만족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통해해도 된다. 우리가 바보이거나 감사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용시장의 수요와 모든 인간이 가진 폭넓은 잠재력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다소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점은 또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것은 직업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하필이면 내가 역사의 이 시기에 살고 있어서 생기는 실존적 슬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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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에세이

#퇴사스토리

#진로고민

#직업가치관

#인생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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