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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지우 Jun 24. 2023

배수의 진

꾸준함

모든 일의 핵심이다.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실천이 어렵다.


중고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늘 미루다가 시험일이 다 되어서야 책을 펼쳤다.

소위 말하는 벼락치기로 시험을 치렀는데 점수가 꽤 잘 나오는 편이어서 친구들이 '벼락치기의 왕'이라며 치켜세웠었다.


대학 때는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공부했는데 벼락치기 습관이 몸에 배어 자꾸 미루기만 했다. 그래서 공부하기 전에 항상 자격증 시험 접수부터 했다.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겠지라는 심산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굶어 죽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뇌가 위험이라고 인지하지 않는 이상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생존을 위협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좀처럼 힘들다. 주위를 둘러보면 미래를 위해 퇴근 후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많다. 자극은 받지만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겨우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자기 계발 관련 책을 꾸준히 읽었지만 읽을 때만 잠깐 동기가 생겼고 다시 원상 복귀되었다.




나는 올해 1월 말에 회사를 나왔다. 모아둔 돈도, 패시브 인컴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오면 수입이 제로가 된다. 알지만 감행했다.

'배수진(陣)', 흔히 배수의 진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상황인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쓰는 전술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겨우 움직이고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정신 차리는 나란 인간을 바꿀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어떻게 됐을까?

우선 소비를 줄였다. 지난 5개월 간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옷과 신발은 사지 않았다. 유일하게 책 소비는 늘었다. 종이책을 좋아하는데 이것도 ebook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이다.

첫 달은 퇴직금으로 여유롭게 지냈다.

다음 몇 달은 가지고 있던 보험에 손을 댔다. 예전부터 손 봐야지 했던걸 알아보기 귀찮아서 내버려 뒀는데 상황이 귀찮음도 해결했다.

그다음은 해외 근무 때 몸담았던 곳에서 일감을 줘서 수입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수입이 없어서 곤란한 적은 없었다.


나는 분명히 변했다.

직업은 없지만 할 일은 많아서 예상보다 바쁘다.

더 이상 미루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의욕에 넘친다.



잘 지낸다 해도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와 잠을 들 수 없을 때가 있다. 불안은 안도감이나 확신이 없을 때 오는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다. 이런 심리 상태에 잠식되지 않게 나 나름의 방법이 생겼다.

하루 이틀 하던 일을 내려놓는다. 산책을 하거나 하루 종일 도서관에 박혀 책만 읽는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면서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진다.


뮤지컬 배우 김호영 님이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나는 잘 될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인상적이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을 나와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불안과 함께 따라오는 게 조급함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자기 배려다. 타인에게는 따뜻하게 격려의 말도 잘 건네면서 자신에게는 늘 냉정하다. 언제까지라는 목표는 있어야 하지만 스스로에게 적응할 시간을 줄 필요도 있다.



조만간 조직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배수의 진을 칠 때 이미 각오를 했었다. 필요하면 뛰어들겠다고. 힘들고 지겨워도 버텨내겠다고.

모든 게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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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에세이

#퇴사스토리

#배수의진

#자기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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