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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앓던 마음을 고쳐쓰기

02 | 나를 위해 쓰는 처방전

by 김혜민

할아버지를 잃으면서 나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가 미워서 버려두었다. 미워서 외면하고 돌보지 않으니 점점 더 미운 모습이 되었고 그래서 더 외면하고 더 돌보지 않았다. 결국 본업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지도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구조 요청이었다. 내면의 버거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어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처음이다. '돕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것이라고, 더 일찍 알아채고 손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인간적인 존중과 연민을 잊지 않는 지도교수님. 이렇게 해서 학교와 연계된 임상심리학자와의 상담 치료 다섯 번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도망가고 싶었다. 운 좋은 날에는 작업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 않은 많은 날에는 시작조차 못 했다. 막상 시작을 하면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렇게 운 좋은 날은 열흘에 하루 정도였다. 그런 시간이 쌓여가다 보니 극도의 불안감도 나란히 쌓여갔다. 본업은 마비되었지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과업은 완전히 해냈다. 본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죄책의 마음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임무를 완벽히 해내며 보상하고자 했던 것이다. 상담선생님은 근본 원인에서 비롯한 불안감을 관련 없는 사소하고 쉬운 성취로 대리 만족 하고자 하는 경향이 반복되는 것이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근본 문제의 마비 상태를 풀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고 버거우니까 원인과 관련은 없으나 쉽고 빠르게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대타'를 찾아 마치 근본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착각하고 만족을 느끼려 하는 악순환이 바로 중독이라는 것이다. 창고 정리와 거실 청소에 '중독'이라니. 중독, 별거 아니구나.


근본 원인은 장기간의 부진에서 오는 번아웃이거나 완벽주의 성격에서 비롯한 지연 욕구라고 생각했다. 상담도 이 두 가지 요인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상담선생님은 이 모든 증상이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시도와 좌절, 기대와 실망이 오랜 기간 반복되다 보니 뇌가 작업 과정 자체를 하나의 '부정적 경험'으로 인식하여 이를 회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순조로운 과정을 통해 얻은 성공적인 결과, 혹은 시련을 부단한 의지로 극복해 내고 얻은 성공적인 결과만을 추구하고 인정하는 경쟁 사회에서 학습되어 온 자아가 순조롭지 않은 과정과 성공적이지 않은 결과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더 어려울 수 있다고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밀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떨쳐내려 하지 말고 그냥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시작만 해보라고 조언했다. 작업 시간이나 작업량에 대한 목표치를 세우지도 말고 '뭐, 그냥 시작이나 해보자'하며 가볍게 대해 보라고 했다. 꼭 활기차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일을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괴로운 마음으로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보다 일단 그냥 일을 '시작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아직은 힘이 없으니 삽을 들고 땅을 팔 수 없다. 그럴 때는 작은 디저트 포크 하나 손에 쥐고 흙을 긁어내기만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섯 번의 상담이 끝났다.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불안의 정도는 조금 낮아졌다. 적어도 뇌가 비정상으로 작동해서 벌어진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 확인에서 오는 안심의 효과가 일부 있었다. 그리고 상담에 임하기 위해 스스로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정리해 보고 말로 풀어내어 볼 수 있었던 기회 자체가 작지 않은 해소의 과정이었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전문가의 소견이 불안과 무기력을 조금은 안정시켰다. 특히, 상담선생님이 공유해 준 불안과 공황 발작에 대한 자료를 읽은 후 실제로 증상의 발현이나 증상 발현에 대한 불안이 감소했다. 감정과 신체 반응의 작동 원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감정적인 위로가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상담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난 후, 상담 노트를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상담선생님에게 말로 털어낼 기회는 더 이상 없지만 대신 스스로에게 글로 털어내어 보기로 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기로 했다. 피하고만 싶던 마음을 눈앞에 딱 잡아 놓고 정물화 그리듯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꾹꾹 누르며 눈에 보이는 대로 스케치해 나갔다. 보기 싫은 나를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 가망 없고 형편없고 한심한 모습일까 봐 두려웠다. 참다 쓰다 참다 쓰다를 반복하던 와중에 문득 '할아버지를 잃었지만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는 문장이 쓰였다. 논문 작업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왜 떠오른 건지. 쓰인 문장 앞에 멈춰 한참 바라보았다. 더 이상 이어 쓸 문장이 없었다. 이게 가시였구나.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온몸을 아프게 했던 가시를 갑자기 찾게 되었다.


깊숙이 아프게 들여다보니 결국은 자포자기의 마음이었다. 할아버지를 잃고 제대로 애도하지 못 한 스스로를 향한 미움에서 시작된 허무함이었다. 논문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있고 실행 과정에 대한 명확함도 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자랑스럽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한심스러웠다. 이제 할아버지도 안 계시는데 하면 뭐 하나 싶은 허무함과 무력감이었다. 작업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무겁고 무서운 허무함과 무력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한참 후 한마디가 따라왔다. '할아버지.' 고통의 뿌리를 알고 나니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가시가 어디 있는지 발견하고 나서야 비소로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부르며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릴 적에 참 자주 체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두껍고 커다란 손으로 나의 어깨와 등을 퉁퉁퉁 한참 동안 쓸어내려 주셨다. 할아버지가 약손으로 쓸어내려 주시면 머지않아 막힌 속이 뻥 뚫렸다. 단단히 체한 마음을 쓸어내려 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잃은 후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이제라도 못 다 한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라도 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써 내려갔다. →「잃어버린 할아버지: 나를 위해 쓰는 부고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분주한 스포츠 센터 카페테리아 중간 테이블에 앉아 긴 글을 쓰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할아버지를 잃은 후 처음으로 제대로 울었다. 슬퍼서 살 것 같았다. 깊게 박힌 가시가 이거였구나. 오랜 논문 작업에 성과가 없어서 찾아온 번아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저 드러난 증상일 뿐이었다. 슬퍼해야 하는 순간에 완전히 슬퍼하지 못한 마음이 고름 같은 눈물로 가득 차있어서 온몸과 마음이 아팠던 것이었다. 저절로 터질 기회를 놓쳤기에 일부러 터뜨려 줬어야 했는데 그런 줄을 몰랐다.


글과 눈물을 함께 쏟아내고 났더니 내가 나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몇 년 간 스스로에게 미움을 받던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에게 항상 사랑을 받던 나를 다시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He lives in you."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도, 무파사의 아버지도, 나의 할아버지도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내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나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으로 키운 존재가 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스스로를 미워할 수 없다. 무파사도, 심바도 그렇게 스스로 지고 살던 자책의 짐을 떨쳐내고 결국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나도 내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가고 싶다.




여전히 아프긴 하다.

오랫동안 모른 척했던 아픈 가시를 찾았고, 그 가시로 슬픔이 고여있던 풍선도 터뜨렸다. 슬픔이 터진 자리에는 상처가 남았는데 아직은 스치기만 해도 쓰리다. 반창고가 필요했다. 옆나라 독일 어느 작은 마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선배 한 분이 살고 있다. 일 년 반쯤 전에 그 선배가 보내준 엽서에 이 상처에 붙일 반창고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이 반창고를 받아 들고 언제 어디에 붙여야 되는지 모른 채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


"마음먹은 것들을 조금씩 이루면서 평안하게 지내고 있기를."


나에게 써 보내려고 미리 사 둔 엽서를 오랫동안 지니고 다녔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나를 떠올린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캠핑장에서 문득 맞게 된 여유로운 아침에 펜을 들었다고 했다.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는 나를 위해 엽서를 골라 지니고 다니며 생각을 내어주고 펜을 들어준 그 선배의 마음은 처음 느껴보는 빛깔의 애정이었다. 수년간 스스로에게 한없이 차갑고 매정했다. 스스로를 한심한 눈빛으로 쏘아본 순간이 헤아릴 수 없다. 그 눈빛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때 먼 곳의 선배는 무너진 내가 다시 잘 일어서기를 바라며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마음먹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져본 적은 있지만 마음을 적게 먹고 작게 이루자 결심해 본 적은 없다. 그 해 본 적 없는 경험이 오래 앓던 마음을 고쳐 나가는 시작, 디저트 포크로 흙 한 술 뜨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경험이 평범하게 되풀이되다 보면 이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마침내 편안한 숨을 쉬며 무료하게 책상 앞에 앉아 익숙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평범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오래 앓던 마음이라 고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각오하고 있다. 고치더라도 흔적은 남을 것이다. 그것도 각오하고 있다.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된 할아버지의 존재와 그 존재를 잃고 아프게 앓았던 흔적은 남은 인생에 깔려있을 가지각색의 장벽과 암초들을 요리조리 넘겨내고 피해내고 치워내어 결국은 무료하고 익숙하고 평범한 편안함으로 '돌아오는 길'이 되어 줄 것이다.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으면 무섭지 않다.




(2024년 11월 14일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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