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나를 위해 쓰는 부고(訃告)
늘 가지고 다니던 펜을 잃어버린 것처럼, 늘 가지고 다니던 지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할아버지를 잃어버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뒤져야 찾을 수 있는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사라졌고 그냥 그날을 살았다.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그날 새벽은 당근이의 네 번째 생일날 새벽이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날처럼 살 수도 없었다.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축하도 해야 하고 애도도 해야 하는데 그 둘을 동시에 하는 법을 알 수 없었다. 당근이를 유치원에 보냈고 집에 돌아왔고 아침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방으로 올라와 컴퓨터를 켜고 웃긴 영상을 찾아보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를 잃어버렸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앉아 있었다. 장례식 일정 중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비행편도 없었다. 무의미하고 기이하게 앉아만 있었다. 무의미하고 기이한 내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고 가장 애틋했던 사람이 농담처럼 사라졌는데 나는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상을 멈추지도 않았다. 조문객을 맞으며 가족들과 함께 수고하지도 않았고, 아버지를 잃고 슬펐을 엄마, 이모, 삼촌들과 함께 슬퍼하지도 않았다. 실컷 울지도 않았다. 일상 속에는 울 공간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인의 마지막을 못 보더라도, 장례 절차를 다 놓치더라도, 가능한 빠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어야 했다. 아무것도 못하더라도 오로지 할아버지만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한국에 갔어야 했다. 어떻게든 한국에 가서 잃은 것과 놓친 것과 늦은 것에 슬퍼하며, 할아버지를 잃은 나를 가여워하며 울었어야 했다. 후회와 상실을 부둥켜안고 가족들과 함께 울었다면 지난 몇 년 간의, 그리고 현재의 무기력한 나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끝없는 무력감과 후회에 잠겨 이렇게 오랫동안 허우적거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스스로에 대한 미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무기력의 지옥이었다. 세상을 다 털어 할아버지가 가장 애틋하다고,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며 떠들어 대더니, 막상 그런 존재를 잃고 나서 나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동안 뭐라고 떠들어 댔던 건지. 지독한 위선을 견딜 수 없었다. 뭐가 가장 사랑하고 뭐가 가장 애틋한데. 그래서 네가 그의 죽음을 어떻게 애도했는데. 아주 못됐게 쏘아붙였다. 입에 침이나 바르라고 날카롭게 째려봤다. 무기력, 혼란, 혐오, 절망, 원망. 괴로운 감정들을 섞어 나에게 들이부었다. 깊고 깊은 무기력과 불안에 스스로 가라앉아 숨이 막힌 채 살았다.
할아버지를 잃은 후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불러보았다. '민아'하고 답하시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민아, 할아버지는 괜찮다. 우리 손녀가 얼마나 할아버지 보러 오고 싶었을지 할아버지가 잘 알지. 지구를 포장해서 선물해도 부족할 만큼 할아버지가 우리 민이 사랑하는 거 알제. 우리 손녀 덕분에 할아버지는 즐겁게 살았다. 인쟈 너거 할매랑 다시 만나서 재미나게 지내야지. 오서방은 잘 있제? 아가야도 잘 있제? 자랑스러운 우리 손녀, 꼭 멋진 박사님 돼라. 박사님 되는 날 할아버지랑 축하 파티 하자. 여기서 너거 남천동 할배 만났는데 또 서로 우리 손녀 이야기만 했다. 얼마나 똑똑한지 그 어려운 박사 공부를 외국에서 다 한다고. 그날 전화로 할아버지 얼굴 봤제? 할아버지 얼굴 좋았제? 할배는 여기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오토바이 타고 낚시도 다닌다. 여기 오니까 고씨 아저씨도 있고 김선생도 있고 다시 만나니 재밌고 좋네. 민아, 그러니 할아버지 없어서 힘들어 말고 우리 손녀도 즐겁게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고생 많았다. 우리 혜민이, 화이팅, 또 화이팅! 유노 안다스텡? 아이러브유~ 쌩큐베리마취!』
할아버지, 나는 매일매일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그래서 할아버지의 상이군인증을 지갑에 신분증처럼 넣어 다녀. 할아버지가 보청기 주파수 맞추던 소리도, 할아버지의 두껍고 커다란 손도 그립다.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 계속 힘들었어. 누구한테 털어놓기도, 스스로 떠올리기도 힘들 만큼 슬펐어. 너무 슬프고 아프고 미안해서 할아버지를 부를 용기가 안 났어. 진작 '할아버지'하고 불러봤다면 이렇게 오래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진작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면 이렇게 오래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실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실지 알 것 같아서 이제 힘들어하는 것을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 평생 나의 할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고마워. 할아버지의 존재 덕분에 나는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도 자신 있고 든든했어. 할아버지한테 사랑받으면서 컸고 늘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꿀릴 게 없었거든.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할아버지가 있는 삶을 살 거야.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세상에서 살 거야. 할아버지가 주신 사랑이 인생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드리고 싶어. 할아버지가 즐겁게 사시다 물려주고 가신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평생 그러셨던 것처럼 명랑하고 너그럽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사는 모습 보여드릴게. 할아버지가 포장해서 나에게 선물해 준 세상, 잘 살아서 당근이한테 물려줄게. 왕할아버지한테 받은 선물이라고 꼭 말할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매일매일 부를게. 이제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귀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기억과 마음속에서는 늘 들릴 거야. 내가 평생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우리 할아버지, 지금도 보고 싶어.
할아버지가 하늘로 돌아가시고 나서 일상과 인생과 자아가 휘청거리는 5년을 보냈다. 큰 존재를 상실한 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무력함. 이 무력함은 스스로를 위선자로 만들었고, 위선자인 나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5년 만에 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며 대답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많은 이유로 이제는 괜찮아도 된다. 첫째, 할아버지를 사랑한 내 마음은 가짜가 아니었다. 내 사랑은 위선이 아니었다. 평생을 할아버지 있는 세상에 살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남았다. 발 밑이 무너졌다.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세상만큼 큰 존재가 맞았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를 정말 사랑했다. 둘째, 휘청거림의 시간은 내가 할아버지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공식적인 애도의 절차에는 아무것도 참여할 수 없었지만 아무런 애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매 순간, 괴롭고 힘겹게 할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하며, 할아버지의 존재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무력해 보이던 나는 사실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할아버지와 더 가까워졌다. 할아버지는 이제 나의 마음과 기억 안으로 옮겨졌다. 일상 모든 장소에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다. 넷째, 내가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남겨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여운 손녀가 아니고 할아버지로부터 세상을 물려받은 뿌듯한 상속인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으로 꾹꾹 채워 놓으신 후 할머니 옆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나는 눌러 담겨 삐져나올 지경인 이 투박한 사랑을 든든하게 옆구리에 끼고 밝고 명랑하게 살면 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2024년 11월 13일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