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그리움

책가게 일지 03

by 김혜민

책가게를 돌보면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몇 개 있어요. 그 장면들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책가게를 구상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조금도 예상하거나 기대한 적이 없는 장면이라서 그래요. (사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장면은 책가게가 문을 연 지 두 달 즈음되었을 때인 2020년 11월 어느 토요일 오전, 십 분 정도의 러닝 타임동안 이어진 장면입니다. 책 사진까지 꼼꼼히 찍어 보내주시면서 책가게에 책을 후원하고 싶다고 다정한 메시지를 주신 후원회원이 계셨어요. 마침 공유서가에 청소년을 위한 책들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사진 속의 다양한 청소년 책들이 특히나 반가웠어요. 토요일 오전으로 약속을 잡았고, 감사하게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직접 책가게까지 책들을 가져다주셨어요. 약속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차 한 대가 도착했고 처음 뵙는데도 불구하고 참 반갑던 두 분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어요. 현관문을 열고 드디어 두 분을 만나 첫인사를 나누는데 옆에서 당근이가 대뜸 삼촌후원회원을 덥석 안으며 환영의 인사를 전하더라고요. 그때 당근이가 다섯 살 반이었어요. 초면에 대뜸 안기는 당근이가 뜻밖이셨을 텐데도 "아이고, 너도 사람이 그리웠구나!" 하시며 번쩍 안아주셨어요. "우리 애들은 사춘기라 이렇게 아이를 안아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네요." 하시며 웃으셨어요. 이후 일정이 있으셔서 책을 내려두고 서둘러 떠나셔야 했지만 그 잠시 동안에도 어린 당근이의 마음을 다 받아주고 가셨어요. 아쉬웠던 당근이는 "다음에는 이모삼촌이랑 엄청 많이 놀고 싶어!"라고 훗날을 기약하며 두 분을 보내드렸지요. 떠나시면서 당근이에게 미안해하던 두 분의 넓고 따뜻한 모습이 아직도 그려져요.


"너도 사람이 그리웠구나." 당근이에게 하신 그 말씀이 잊히지 않아요. 몰랐는데, 당근이가 진짜로 그랬던가봐요. 당근이의 일상 속에서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이 엄마랑 아빠뿐이었는데,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 이모삼촌이 짠하고 나타난 순간 후광을 봤나 봐요. 삼촌을 보자마자 안아주며 그 황홀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삼촌은 그 마음을 대번에 알아봐 주신 거였고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나 생각해 봤더니, 당근이의 마음을 알아주신 그 말씀이 제 마음까지도 헤아려 주었거든요. 타국에서 한국책에 대한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책가게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사람'이 그리웠던 제 마음이 더 먼저가 아니었나 싶어요.


2020년은 네덜란드도 코비드-19(COVID-19)의 등장으로 우왕좌왕하던 첫 해였어요. 그해 봄에는 당근이네 학교도, 저희 학교도 몇 주간 문을 닫았었고, 최대한 집에만 있으라는 정부 권고가 나왔었지요. 새벽 기차로 연구실을 오가던 제 일상은 갑자기 멈춰버렸고, 세 식구가 집에 옹기종기 붙어서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는 일상이 매일 펼쳐지게 된 것이죠. 집 앞에 나와 어슬렁 거리는 것 말고는 달리 외출할 곳이 없던지라 이 시기에 이웃들과 안면을 많이 텄더랬죠. 학교를 못 가서 심심하게 빈둥거리던 당근이는 허구한 날 아부지랑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니 자전거를 습득하게 되어버렸고, 할 일이 없어서 줄넘기 마저 가지고 놀다 보니 줄넘기를 배우게 돼버렸죠.


학교가 문을 닫아도 스스로 성장하던 당근이와는 달리 저는 학교가 문을 닫으니 공중에 붕 떠버렸어요. 한창 피치를 올려가던 논문 작업이 중단되어 버렸고, 집에서 정상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어요. 락다운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공중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몸과 마음은 조금씩 더 휘청거리기 시작했지요. 그해에는 한국에도 다녀올 수가 없었어요. 일 년에 한 번 고국에서 채워오던 몸과 마음은 채울 길 없이 비어 있었어요. 최대한 가구 구성원끼리 지내고 그 외에는 서로를 멀리하라는 1.5미터 지침이 공식적으로 내려진 마당에 이웃과 서로 안아주며 마음을 나눌 수도 없었고, 가구 구성원이 아니면 함께 걸으며 산책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어요. '전염병이 창궐한 미래 도시' 같은 상황이 일상이라는 것이 매 순간 믿을 수 없었고 언제 끝날 지도 알 수 없었죠. 모든 것이 단번에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회복으로 가는 전환의 시기가 왔을 때 최대한 부드럽게 거칠 수 있도록 잡고 버틸 작대기가 필요하더라고요. 휘청거려도 자빠지지는 않을 수 있게 함께 서 있어 줄 작대기가요.


그 작대기를 찾아 헤매다가 집어 든 게 바로 책가게 프로젝트였어요. 한국에 직접 가지 않는 이상 고국의 생생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요. 한국말이 섞여 있는 소음과 무수한 차들이 뿜는 매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무심한 표정 속을 지나 동네 식당에 돼지국밥 한 그릇 때리러 가는 신난 발걸음의 생생함을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요. 어떠한 삼차원과 사차원도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책으로 고국의 말과 글과 정서와 이야기의 빈자리를 채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책이 불러온 각자의 지난 기억과 추억은 상상도, 가상도 아닌 현실이니까요. 사람이 직접 왕래할 수가 없으니 직접 온기를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얼마든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책을 통해서는 모자란 따스함을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책한테는 부담 없이 1.5미터의 사회적 거리와 14시간의 비행 거리를 이어 달라고 무거운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왠지 책은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과 고국의 온기가 빠진 빈자리를 저만 느끼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대기가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 쓰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코비드'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도화선이었지만 개인적인 경험도 힘을 보태긴 했어요. 이 나라, 저 나라 혼자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엄마나 친구가 비싼 국제 우편으로 가끔 보내주었던 한국책 한 두 권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럭셔리'였어요.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밤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오열하던 기억,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며 통곡하던 기억이 있어요. 낯선 도시의 낯선 풍경 속에서 낯선 사람들의 낯선 언어에 둘러 쌓인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한글이 빼곡히 적힌 책은 그냥 전시해 두고 이리저리 보기만 해도 위로였거든요.




혼자 생각만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큰 짝꿍에게 발표했어요. "한국에 남겨두고 온 우리 책들, 가족들 책장에 잠자고 있는 책들, 지인들이 읽던 책들을 후원받아서 가져와 여기서 판매하는 작은 서점 어떨까. 예를 들면, '아주 작은 책가게'라든가 하는 이름으로." 뜬금포 아이디어가 황당할 법도 한데 꽤 티 안 내고 덤덤히 들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회의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책을 얼마나 모을 수 있겠냐, 모은 책은 어떻게 가져올 것이냐, 가져온 책의 판매 가격을 어떻게 정하냐, 어떤 책에 대한 수요가 있을지 어떻게 아냐, 신간도 아닌 책을 사겠냐, 개인 중고 거래와 어떻게 차별화하냐, 등등... 책을 파는 공간을 상정하고 아이디어 파티를 하니까 물음표가 급격히 늘어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근처 도시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 부부에게 슬쩍 이야기를 풀어놨더니, "책을 대여해 주는 건 어때요?" 하시더라고요. 아하, 책을 사서만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책은 빌려서도 읽을 수 있지. 그 덕분에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스크린샷 2025-04-03 134823.png 기술이 없어서 이것저것 어째 어째 끄적끄적하다가 지금의 책가게 로고가 탄생하였답니다.


방향을 바꿨어도 여전히 물음표는 많았어요. 기간제 멤버십으로 해야 하냐, 대여 기간은 얼마가 적당하냐, 권수 제한이 필요하겠냐, 어떤 플랫폼으로 구현할 수 있겠냐, 보증금은 어떻게 하냐, 연체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동이 투입되겠냐, 등등... 관련 분야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둘이서 머리를 굴려봐야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질문들이 매일 새롭게 주렁주렁 열리다 보니 결국 무엇도 결정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인 찬스를 쓰기로 했답니다.


출판이나 비영리, 해외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죠. 전염병의 시대에 사람들이 남의 책을 빌려보려고 하겠느냐, 배송비 때문에 선뜻 이용하겠느냐 등등 회의적인 피드백도 당연히 있었고, 필요한 시각이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한 번 해 봐라' 응원해 주시고, 최대한의 조언을 힘껏 주셨지요. 특히나 (큰 하트) 조창완 작가님, 최순대, 요다 언니, 비아 언니, 서진 언니, 은경이 (큰 하트)에게는 아직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감사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을 진지하게 들어(읽어) 주시고 정성스럽게 답장을 해 주셨거든요. 이런 기관이 있는데 한 번 컨택해 볼 테냐, 요즘 한국에는 이런 콘셉트의 서점들이 있는데 한 번 참고해 볼 테냐, 후원자에 대한 리워드도 고민해 볼 테냐, 홍보에는 인스타그램이 유용할 텐데 한 번 활용해 볼 테냐 등등 저랑 큰 짝꿍 둘이서는 아무리 궁리해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아이디어와 조언을 주셨어요. 결국 그 조언들이 현재 책가게 구석구석에 다 스며들어 있답니다.


스크린샷 2025-04-03 134206.png 2020년 4월,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했던 씨앗책 모집 포스트예요. 오랜만에 보니 마치 당근이 아기 때 사진을 다시 보는 것처럼 애틋한 기분이네요.


2020년의 봄, 3월 어느 날 느닷없이 입으로 뱉은 "예를 들면, '아주 작은 책가게'라든가"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에 지혜롭고 다정한 분들의 조언이 덧입혀져 4월 초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4월 말부터 한국에서의 씨앗책 모집을 시작했지요. 한 달 반 동안 모은 천 여권의 씨앗책들은 당근이할머니, 당근이할아버지, 당근이삼촌할아버지의 수고와 지지로 '빠레뜨 [규범 표기는 '팰릿(pallet)'이라고 합니다]'에 야무지고 단단히 포장되어 6월 초 부산항에서 네덜란드로의 항해를 시작했지요. 긴 항해 끝에 로테르담에 도착한 게 7월 초였어요. 큰 짝꿍이 짐 싣는 밴을 한 대 빌려 직접 로테르담 항구에 가서 통관 등의 절차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 7월 중순이었고요. 책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한 달의 시간 동안 저희는 책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었어요. 중고 장터를 통해 책장을 대여섯 개 구해 거실 한쪽 모서리에 공간을 확보해 두었죠. 그렇게 마련된 서가에 차곡차곡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책가게 홈페이지 마무리 작업을 했지요. 그리하여 (중간 과정의 다채로운 노동 생략) 책가게는 2020년 9월 4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압축해서 쓰다 보니 이 모든 과정이 반년 만에 이루어졌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렇게 시작된 책가게는 곧 다섯 살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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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빠레뜨'에 예쁘게 실려 출항을 앞두고 있던 씨앗책들 부산항 시절 / [우]긴 항해 후 책가게에 도착한 첫 날, 비닐을 벗고 한숨 돌리고 있는 씨앗책들




사람이 참, 그래요. 이 공간이 '누군가'의 갈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콩알만 한 야심으로 시작한 줄 알았는데, 결국은 이것조차도 '나'를 위한 시작이었구나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에 달콤한 케이크는 주지 못할지언정 시큼한 레몬은 주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근데 케이크든 레몬이든 타인에게 무엇을 주려고 한다는 동기 자체가 깊이 들여다보면 착각일 때가 많아요. 특히 저 같은 그냥 보통 인간에게는요. '이타적인 인간'은 본능과 상식을 초월한 초능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끔 이타적인 분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보거나 읽으면 마음이 흔들리는 울림을 받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책가게 '계기판(計器板)'에서 '온기'를 가장 먼저 확인할게요. 그게 책가게가 존재하기로 한 계기니까요. (흠, '계기판(契機板)'이라고 해야 맞을까요.) 온기가 고파서 시작한 공간에 온기가 몽실몽실 떠다닙니다. 책에 실려 오가는 마음의 온기가 사 년 반동안 쌓여온 덕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책가게 '온기' 수준은 '가득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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