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작 Mar 22. 2022

결혼 30분 전. 축하 영상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다. 난 결혼을 했다. 아무도 내가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모두가 나를 '일하고 결혼할 여자'라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소개팅에 소자' 언급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이거 은근 서운했다. 내가 아무리 일을 좋아한다고 해도 연애는 하고 싶다고!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비밀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비밀 연애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그 누구도 나에게 '연애'에 대해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후, 팀원들에게 '청첩장'을 돌렸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작가님 결혼해요? 와 근데 어떻게 한 마디도 안 할 수 있어요?? 

- 네...? 여러분들이 묻지 않으셨잖아요.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팀에선 결혼식 축하 영상을 제작해주는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을 만들어준 팀장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방송국 놈들이 만드는 축하 영상. 때깔부터 다르다. 이미 나도 앞에 두 친구가 결혼하는 걸 봤기에. 그 영상만큼 부러운 게 없었다. 단지 연예인들이 우르르 나와서 결혼을 축하해요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런 팀 없다. 일단 몰래몰래 내가 일하는 모습을 촬영한다. 하지만 죽어도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나는 기가 막히게 카메라의 위치를 알아차려 늘 실패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찍힌다는 생각이 들면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러면서도 축하 영상을 바라는 나. 욕심이 많다.


근데 난 몰랐다. 축하 영상을 식'전'에 볼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인 나 역시 결혼식 당일, 하객들과 함께 영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식 '당일'. 결혼식 30분 전. 식장 직원이 부랴부랴 나에게 달려온다. 느낌이 싸했다. 

- 무슨 일 있나요?

- 신부님. 결혼식 영상이 도착하지 않았어요..... 


이것은 마치 생방 30분 전까지 VCR (영상)이 완성되지 않은 것과 같은 것.  난 빨리 피디님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영상이 아직 안 왔다는데!!!' '오전에 OO피디님이 자막 뽑는 것까진 확인했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식장에 떨림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진가님이 신부님 웃으실게요 하면 억지로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영상은 어떻게 된 것인가!!! 를 100번이고 되뇌었다. 사실 이 영상말고는 우리 결혼식엔 주례도 없고 양가 어르신들의 말씀도 없었기에 영상이 빠지면 큰일이었다... 


그렇게 난 영상의 유무 확인도 하지 못한 채 버진로드를 밟았다. 대체 어떤 정신으로 입장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본적인 식순이 진행되고 사회자가 '이젠 우리 작가님이 속한 OO프로그램에서 아주 스페셜한 영상을 준비해주셨다고 하는데요. 함께 볼까요?' 하는 순간까지도 정말 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  불이 꺼지고 영상이 틀어졌다. '아 왔구나 왔어!!!' 


영상은 정말 내 인생 최고의 VCR이었다. 만날 누군가를 위한 영상을 함께 작업해봤지 '내'가 주인공인 영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했다. 함께해준 사람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말. 얼마나 훌륭했으면 프로그램을 그만뒀던 언니가 '복귀하고 싶다'라고 할 정도. 


물론 식전 30분까지 영상이 도착하지 않아 또 나의 수명을 갉아먹긴 했지만.

역시. 방송국 놈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이런 글까지 써야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