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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05. 2022

영화 이야기 <사도>


영화에는 두 가지 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이야기의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개 방식의 구성입니다. 먼저 이야기의 구성을 플롯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중심이 되는 하나의 사건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수많은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사건을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묶어서 더 큰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거나 늘이는 일입니다. 저는 이것을 인과관계라고 부릅니다.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이야기는 선명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희미해지며 이 명암이 영화의 빛과 그림자가 되어 관객이 서 있는 각도마다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하나의 사람이란 하나의 시선이고 시선이란 서 있는 곳의 각도입니다. 플롯은 각도마다 다르게 보이는 빛과 그림자를 조율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일도 그렇지요. 어떻게 인과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이 됩니다.


다음은 전개 방식의 구성입니다. 이야기의 구성을 내용이라고 한다면 전개 방식의 구성을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은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바깥으로 꺼내는 일입니다. 이야기에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것, 즉 플롯을 설정하는 일은 그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일. 그것을 전개 방식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이라고 하면 어쩐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들려도 실제로는 샴쌍둥이와 같습니다. 다르지만 떨어질 수는 없지요. 이것이 떨어지면 아예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잘 만든 영화는 내용과 형식이 서로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런 형식이 필요하고 이런 형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체육복을 입고 프러포즈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사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내용과 형식이 서로의 꼬리를 물려고 덤비는 두 마리의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두 마리의 용은 멀리서 보면 구분되지 않고 그저 무한을 상징하는 원의 형상으로만 보입니다.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는 날부터 죽어 염하는 날까지 총 8일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이 8일은 연속적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교차 편집됩니다. 과거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1일. 또 다른 과거를 보여주고 2일. 이것은 불연속적인 것이지만 단절을 느낄 수 없는 기묘한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이 흐름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연속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속성에서 태어납니다. 말하자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것은 특정한 잘못이나 문제 때문이 아니라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전체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형벌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죄를 짓고 벌을 받는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하나의 결과에 하나의 원인만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적인 것입니다. 사도세자는 왕에게 칼을 뽑았기 때문에 뒤주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의 생 자체가 원래 갇힌 것이었다고 영화는 이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유관성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유관성을 생각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만 가능하지요. 말하자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공존하는 것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콘택트>에서 이러한 사고를 인상 깊게 보여주기도 했지요.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생을 관통하는 시간 같은 건 없습니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는 것. 마치 책처럼 수많은 페이지가 쌓여 있지만 언제든 페이지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시각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시각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 사라지는 것이 없기에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있고 그 시간을 함께한 너 역시 보이지 않을 뿐 죽지 않는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가 이별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함께한 시간의 소멸이 아니라 정리일 뿐이라고 영화 <콘택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은 소중한 기억만이 아니지요. 소중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괴로운 기억 역시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의 형식을 관장하는 것은 후자 쪽입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자신의 생각도, 행동도, 감정도, 이상도 모두 아버지라는 한계 속에 포박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뒤주란 곧 영조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 세자가 죽은 후 뒤주를 깨고 나서야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는 영조의 모습은 바로 그것이 부서진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지요. 온전한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영조는 자식을 가둘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조가 상상한 온전한 자기 자신이란 바로 ‘예’입니다. 예법이라고도 하는 이 예는 다름 아닌 조선 왕조의 역사, 즉 과거의 축적인 것이지요. 이 나라는 예법이 국시라고 말하는 영조의 말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영조의 모습은 편집증을 떠올리게 합니다. 죽을 사와 돌아갈 귀는 말할 때 사용하지 않고 정무회의 때 입었던 옷은 안에서 입지 않으며 불길한 말을 들으면 귀를 씻고 부정을 태운 후에 침소에 들고 심지어는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나가는 문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편집증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떤 모양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에 맞게 스스로와 주위를 편집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어떤 틀에다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도에 따라서는 훌륭한 자기 관리가 되지만 지나치면 과한 집착과 과민증상으로 번집니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무수리로 천민에 속합니다. 조선 시대는 종모법에 따라 어머니의 혈통을 따르므로 정실의 자식이 아닌 영조는 대군이 아닌 군이었습니다. 영화 속 국문장에서 죄수들이 얘기한 바와 같이 왕의 아들이 아닌 천한 무수리의 아들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분제로 인한 차별의 설움과 그로 인한 목숨의 위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고 겨우 왕이 된 영조가 왜 그 누구보다 엄격하게 예법을 따르는 왕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가 아니고서는 영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분이라는 것은 예법에 귀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는 분명 신분 콤플레스가 있었겠지요. 다만 이 콤플렉스는 어머니가 천인이라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콤플렉스라는 건 언제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성질들의 충돌에서 발생합니다. 영조가 가진 신분 콤플렉스는 바로 자신이 왕의 아들이면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것. 거꾸로는 왕의 아들도 아니고 무수리의 아들도 아니라는 것에 기인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는 것이 영조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내적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나는 나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로 외우고 다니는 답안 같은 게 아닙니다. 대개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렇듯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는 스스로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합니다. 가령 꿈이 배우인 사람은 창피해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꿈이 배우라고 말할 수 없을지언정 자기 스스로에게만은 나는 배우가 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상상할 때 그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마저도 누군가의 얼굴이 불쑥 들어온다면, 위험한 손과 무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나를 상상하는 일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한 나는 비록 상상 속의 인물일지언정 고스란히 현실의 내가 되는 것입니다.


왕의 아들도 아니고 무수리의 아들도 아닌 영조가 왕으로서의 자신도 천인으로서의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 즉 자신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내면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영조가 지닌 편집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서 대답을 찾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은 외부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 탐색의 목적은 발견이 아닙니다. 사람의 외부에는 수많은 상이 있습니다. 그 상 중에서 자신을 불안하지 않게 하는 상을 찾고 그 상에다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 것이 바로 탐색의 진짜 목적이 됩니다. 그렇다고 외부에 어떤 상을 찾아서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병적인 편집증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외부에서 자신이 닮고 싶은 상을 찾게 마련입니다. 편집증은 꼭 정신병의 일종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단지 정도에 따라 병이 될 뿐이지요.


영조의 경우도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조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강박은 오히려 자연스럽지요. 게다가 영조가 찾을 수 있는 외부의 상이란 몹시 한정적이었을 것입니다. 왕이 되거나 죽거나. 궐 안에서 태어난 몸이 궐 바깥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죽고 싶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조는 왕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제반 조건의 수렴 이전에 무엇보다 왕이 될 수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 안에 흐르는 무수리의 피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피는 섞여서 흐르는 것입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피 안에는 왕의 피만이 아니라 무수리의 피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조의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안에서 왕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 영조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도 이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인물이 아닌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상을 발견하여 그 속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 그리고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은 바로 예법의 화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교란 예법의 화신을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래서 예법의 화신에 맞게 스스로를 자르고 깎는 과정인 것이지요. 무엇보다 유학에서의 왕이란 곧 예법의 화신 그 자체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왕은 예를 숭상하고 지키며 예에 따라서 백성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책임자입니다. 따라서 예로써 만들어진 인간은 곧 누구보다 왕에 가까운 인물인 것입니다. 혈통보다도요.


혈통으로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왕으로 상상할 수 없던 영조도 예법의 화신으로서 왕이 된 자기 자신을 상상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수리의 피로 인한 이미 정통성을 부정당한 스스로에게 피를 뛰어넘는 정합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 정합성은 곧 왕으로서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가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어느 것보다 우선적입니다. 공부를 하지 못할까 늘 두려웠다는 영조의 말은 지식광으로서의 일면이 아닌 정체성 상실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는 일면인 것입니다.


이런 영조이기에 공부를 멀리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이 얼마나 불안했는지는 영화 속 일곱째 날에 나오는 영조의 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렇듯 영조가 사도세자의 뒤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스스로가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고 예법의 화신으로서 자기 자신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사도세자의 비극은 아버지를 향해 칼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이며, 이 충돌은 영조의 불안한 유년과 왕이 되기까지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내면의 위태로운 투쟁에 빚을 지고 있고 또 그 빚은 예법으로 신분을 나누었지만 도리어 이 신분의 구분으로 인해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역설의 역사로부터 변통했다는 것. 그리고 이 역설의 역사는 먼 시간부터 시작되었으나 사라지지 않고 오늘에까지 닿았다는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위패를 쓰면서 영조는 그 뜻을 풀어 생각할 사 그리고 슬퍼할 도라고 읽습니다. 말하자면 슬픔을 생각한다는 뜻이겠지요. 슬픔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므로 사도라는 말은 곧 어찌할 수 없음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하여 사도란 인간의 무력함에 대해 말하는 언어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사람은 늘 갇혀 있고 그 속에는 항상 편집증의 우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이라는 말은 꼭 눈물 자국을 닮았습니다. 눈물 자국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안의 눈물 자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기 안의 눈물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의 마음은 젖습니다. 사람은 마른자리에 스미지 못합니다. 그러니 슬픔을 생각하는 일은 자신의 무력함을 떠올리게 하는 말인 동시에 마음을 젖게 만들어 타인을 스미게 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도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또다시 사도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 5월 24일부터 2022년 5월 29일까지


보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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