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변해간것일까?
아니면, 어느날 갑작스런 변화였을까?
십여년전까지는 일에 빠져 죽으면 지겹게 잘 잠것을 하루 몇시간 덜 자고, 더 자는게
어떤 의미가 있고,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느냐며
하루 몇시간이 아닌 이번주엔 몇 시간을 잤는가를 말할 때가 더 많고는 했던 시절
그렇게 20대, 30대, 40대초반을 지내온 듯싶다
누워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시간보다
뜸나면 어디서든 쪽잠을 자는 습관은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부터
들여왔던 수면 패턴
내 연구실에 있던 야전침대와 침낭이 짧은 쉼의 공간이고는 했었는데
만남에 대해서도
언제 만나자는 말엔 무슨 일로 그런건가를 묻는
이유와 목적없는 만남의 시간은 의미를 두지 않던 시절
혼자 99명을 왕따 시키며 살아왔던 듯
어느 날인가부터
아마도 한 친구의 반 강요에 산을 오르며 동기들과 어울린 뒤부터인 듯하다
만남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언젠가부터 그 만남의 시간들과 함께하는 수가 많아졌었다
몇년을 그리 지내왔지만
이젠 다시 몇년전부터는 모임을 멀리하고
만남보다는 한 잔 생각이 나면 책을 안주삼아, 때론 핸드폰속 영화를 친구삼아
혼자 빈 술 잔을 채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의미없는 포장된 말들의 홍수
수 많은 말들 중 진실보다는 거짓아닌 거짓이 많은 말들속에
어울림뒤 허전함이 커지고,
힘듬에 대한 내 말, 상대의 말에 의지보다 오히려 더 커지는 외로워짐을 느끼게 되는
어떤 변화였던 것일까?
어제는 한 친구가 전화로 자신은 SNS를 안한다고
서로를 탓하고 험잡기 위함이 아닌 그냥 큰 의미담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스북이나 밴드 등 다양한 온라인상의 만남의 장들
글을 올리면 그 중엔 뜻하지 않은 댓글에 상처를 받곤 해서 이젠 안한다 한다
세상엔 수 많은 칼들이 있다
아무리 많은 칼이 있다해도 그 중 내 몸에 꽂히는 단 하나의 칼에 상처를 받는다
너의 글에 위로나 너에 대해 말없이 끄덕이는 친구도 많다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찌른 단 하나의 칼이 상처를 주기에
쏘리
썡큐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삶속에선
미안과 감사에 대한 표시
말안해도 알 잖냐는 대꾸는 의미가 있을까?
말하지 않은 것을 어찌 알수 있을까?
미안하다
고맙다
보다 나를 가르키는 손가락
너 때문이다, 늬가 문제다, 바로 너야 너
이젠 나이덕분에 그런 말에 웃음을 머금을 수도 있으니
그래 나 때문이다
그게 자네가 본 나라면,
하지만, 나는 그냥 나인것을 자네가 본것보다 자네 맘속에 그려져 있는 바로 그 난 내가 아니라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장점도 있나보다
도움에 대한 부탁을 할 때의 마음과
어쩔 수 없어 응하지 못할 때 돌아오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응하지 못한 사람도 맘이 편할 수는 없다네
이러한 것은 노래가사가 맞나보다
나이듬이 아닌 익어간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