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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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붓펜으로 그리고 물을 이용해서 흑백을 그려보려했지만

역시 어렵다

지워 버리려 했지만

실패도 내 것

그냥 남겨두련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아내의 말에 무심히 따라 나섰건만

이런 근 5km를 걸어 한 식당엘 들어선다

오고 가고 10km

매일 저녁이면 강아지들과 걷던 길들을 햇살이 투명한 낮에 걸어보긴

처음인 듯 싶다

처음의 의미

갈 때는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고 팔다리에 허리까지도 아프던 것이

올 때는 이미 아는 길이라 그러한 것인지 같은 길이건만 훨 더 수월하다

편하게 오며 가면서는 보지 못했던

곁에 흐르는 운중천의 물소리와 이른 물놀이를 나온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이북으로 책 읽어줌을 들으며 걸었고

오면서는 자주 멈추어 이런 저런 사진들을 핸드폰에 담느라

앞서가는 아내의 뒷 모습을 유난히 자주 보게 된 시간들

이북에선 이병률 작가의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들려준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랑,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내가 따라가고픈 등을 따라갈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만족감이 더해졌을 수 있을까?

짧지 않은 시간

의사로서의 삼십여년의 시간

누군가의 등을 보기 보다는 등을 보이며 살아왔던 듯 시간들

내 등의 모습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판단, 평가는 내 몫이 아니지만

작가 중 내 부러움을 가진 한 사람 이병률

시인이자 여행작가, 그리고 산문가로서의 삶

그의 책을 대하다보면 때론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시골의 흔들리는 버스안에서도

폭설의 덕유산에서 끝을 보고 프다며 서너달을 홀로 머무는 그의 모습

빵내음이 그리워 파리를

드라큐라가 만나고 싶어 루마니아를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의 무덤을 보고프다며 쿠바를

떠날 수 있는 그의 자유가 부럽다

하긴, 그는 여행에 대해 언젠가 형편없는 상태의 빈 집, 헝클어진 채로 돌아온 자신을

스스로 껴 안는 것이 여행이라고 평하고 있지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그리고, 쓰고 싶을 때 글을 써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그의 삶에 대한 부러움

어찌 보면

아직, 난 삶에 대해 기다림속에 있는지 모르겠다

못그리는 그림을 그려보고

엉터리의 그림앞에서 찢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냥 나 자신에 대한

내가 나에게 주려는 사랑을 더 키워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내가 아니면 누가 더 나를 사랑해줄까?

오늘은 내 앞에서 걸으며 등을 보이는 아내도

오랜 시간 내 등을 보며

따라와 준 고마움에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며 갚아야 할 시간들일테니

휴일 출근한 딸아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집에 있으면 데리러 올 수 없냐고,

저녁시간대가 되었으니 저녁 사달라는 다른 표현이겠거니 하고

아내와 가락시장에 들려 산딸기와 수박, 자두를 사고

딸아이를 데리러 가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간다

결국 오늘은 먹는 것 만으로 다 채워진 하루인가보다

기다림

조금은 더 나를 위해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아직은 더 기다려야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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