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반 평생을, 아니 학교를 떠나서를 논하면
내 온 평생을 지내온 곳이 진료실
본과 3학년
88년인 듯 싶다
첫 병원 실습을 돌 때 서로 환자 문을 늬가 열어 하며 가위 바위 보를 하던 기억
첫 환자에게서 초콜렛을 선물받았다고 액자에 넣어 두겠다던 동료
첫 실습으로의 채혈
그렇게 의사가 되어 삼십여년을 지켜온 진료실
새삼 느끼는 것은 뼈속까지 난 어쩔 수 없는 의사인가보다
지나다 누군가의 표정을 보게 되면,
식당에서의 모습들을 보다 나도 모르게 아내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말을 붙여 증상을 묻게 되곤 한다
시사
정치
종교
전혀 뜻하지 않던 메시지와 카톡, 전화요청에 의한 한 밴드로의 초대
난 내 글을 쓴다
의사로서의 내 글을 쓴다
멋진 글은 글을 쓰는 이들의 몫
아마도, 어찌할 수 없을 듯하다
어떠한 무대위의 오페라, 연극, 뮤지컬, 영화나 노래, 광대의 몸짓도
자신의 감정을 담지 않은 인형의 감각이라면 그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할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 놓고의 자기 주장에는 문제가 분명 있을 듯 싶다
소설가도 경험을 담아 글을 쓰지,
머리속 상상으로 글을 담지는 않는다
어떠한 그림이나 음악이 오랜 시간 우리 곁을 함께함은 그의 삶이 그 속에 담겼기에
단지 물감의 조합이나 음표의 나열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숲속엔 늪도 있고,
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공존을 한다
그런 숲을 나도 꿈을 꾼다
나와 다르다 해도, 그 숲은 아마도 내 평생의 시간을 가지고 걸어 가려할 곳일지도
나를 돌아본다
지금까지 내가 아닌, 내 앞 진료실에 앉으신 분을 대하면서
직설적인 것보다는 간접화법으로 다가가려 애를 써왔었던
내 수련이 아직은 너무도 부족한가 보다
사과 사람사이에는 지겼으면 싶은 예의가 있기에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을 하며 살았다 생각하였지만
아직은 내 멀었나 보다
비가 온다
한 호프집 친구와의 환담속 모르는 옆 자리의 누군가 나를 때린 적이 있다
이유를 나는 잘 모른 채, 그냥 그 호프집에서 그를 안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때리면서 오히려 넘어지며 더 다친 것은 그 쪽
왜 그랬느냐는 그 뒤에 물었다
비난과 화보다는 누군가가 힘들 때면 안아주라 전공의 시절 은사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환자가 욕을 하고, 물을 내 얼굴에 부어도 우선은 그 분을 안정시키고 안아 주라고
분명 그 분의 이유가 화가 감정이 우선이 되야 그 다음을 할 수 있다고
이제는 조금씩 느껴간다
뼈속까지 난 의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밖의 세상을 모르기에
음악인이 노래를 하고
연극인이 무대위에서 땀을 쏟고, 침을 튀기고
장사꾼이 실제보다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하나라도 더 매출을 늘리려는 것은
탓할 수 있는 문제라기 보다는 그래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의 자리라는 것을 이젠 조금씩 배워간다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면 또 그만일 밴드나 관계들
하지만, 나온 적은 많아도 어느 순간 밖의 사람이 된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유쾌하다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거꾸로 작은 글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하는 밴드에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그냥 내 작은 맘 속의 위안이겠지
어제 오늘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은 함부로 인연을 맺는게 아님도
그냥 난 내 길을 가면 되는것임을
다른 밴드에서의 나를 보고 초대를 하셨기에 이 글도 보실 듯 하다
기분 상함보다 발전의 기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숲의 의미와 가치를 조금은 다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숲안의 삶은 다양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