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엔 무슨 의미와 뜻인줄도 모른채 접했던
대학시절엔 내 아집과 편견으로 접했던
군대에 있을 땐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하려 접했던
단테의 신곡을
나이 육십을 바라보며 다시 읽는다
'숲 속을 벗어나고 싶다면 다른 길을 택하여야한다
그 짐승들은 본성이 사악하고 해로운 것이어서 사람들을 지나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길을 방해하며 끝내는 잡아 먹을 것이다
그 천성이 본래는 흉악하고 잔인하며 항상 피에 굶주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고
먹기 전보다 먹고 난 뒤에 더 허기져 하는 놈이다
......'
신곡의 지옥편에 나오는 문구중 일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역사속 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해석하여왔었던 그의 글들
멈춤보다
항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동물의 특성일 듯
포획자로서의 동물은 먹이를 위해
반대의 생명은 살기 위해 항상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도 그러하겠지
정글속의 그 들과는 그 모습을 달리한다해도
차라리 자연계에서는 아무리 맹수라해도 배부른뒤라면
사냥감에 대한 호기심이 줄지만
인간계에서의 사냥에는 포만감이란 존재하지를 못할지도
아니, 어쩌면 단테의 말처럼 먹으면 먹을 수록 더 허기가 져지면서
더 많은 사냥감, 한 번보인 약자를 놓아주지 않으려할지도 모르겠다
움직임보다
멈춤을 익히고 싶다
어차피 아무리 움직이며 도망을 치려해도
아마도, 포획자의 눈에 띈 뒤라면 도망을 쳐도 사냥감을 벗어나긴 어려울 듯
육십을 바라보며 새삼 배워간다
내 살아온 그 어느 시절과도 다른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그 시간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냥감과 포획자의 차이가 드러나는 시대속에서
비판
비난
언론이나 정치속
또, 사회의 관계속
사람들은 정의를 말하지만
사실 정의란 말을 할 수 있는자
힘과 권력, 능력, 자기의 자리를 가진 자의 몫일 뿐
버려지고
잊혀지고
당장의 삶의 위태로운 줄위에서는 정의라는 단어나
인의, 믿음, 신뢰를 논할 여력조차도 없어져가는건 아닌지
반세기전 삶을 위해 망망대해위 배에 한 명의 자식이라도 더 타게 하려던 부모세대
현 시대 불가능한 생명줄이라도 잡아보려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날개에 매달리는 모습
시간과 공간은 달리한다해도
결국 단테가 살던 그 시절은, 아니 그가 살았던 더 위의 시절에서부터
돌고 돌고 또 돌아만 가는 것인가보다
아마도, 오늘 뉴스나
내일 뉴스속의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
훌륭하고도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려는 분들의 모습도
또 반복됨을 보이겠기에 그냥 뉴스밖의 세상속
어둠이 깔린 저녁길을 퇴근과 함께 또 걸으련다
그래도, 멈추어져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