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에선 어제의 그 사람들이
어제와 별다를 거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들 호들갑을 부린다
여행을 가고 먹고 놀면서
또, 자신들도 힘들었다며 지난 시절을 말하기도 하고
포털에서는 속보로 살인사건을 말하고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하며
동그라미가 몇 개일지 모를 액수의 선수들을 말한다
어제 한 잔 하려 앉은 식당에서 마주한 방송에서
한 정치인은 20년전 20만명당 35명에서 지금은 29명으로 자살률이 줄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3ㅣ분마다 한 명씩 자살하던 게, 45분마다로 늘었나 보다. 그들이 좋아하는OECD평균의 2배가 넘는 언급은 없고
과거 힘들고 지쳐 스스로의 목숨을 선택하던 것이
이제는 왜 나 혼자?
억울함을 표하려는 것일까?
불특정다수, 다가갈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아닌
바로 그냥 우연스럽게 곁을 지나는 누군가를 동반자로 선택하는 것일까?
어찌 보면 그 들도 이 사회가 만든 괴물이 아닌
슬픈 연약한 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더 약한 정신을 가졌기에 스스로의 안에 가둬두지 못함을 욕먹어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결과만을 논하기보다 문화적, 현실적 그 이유에 대해 논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터널을 벗어나려 달린다
터널 밖이 어둠인걸 알게 된다면?
이상하지? 내가 될 수도 있는 불특정의 피해자 속에서 가해자를 생각하게 됨이
자살률이 타살률로 바뀌어가는 정서가 사회 속에 물들어가는 세대가 되어버릴까 후배들에게 미안함만이 더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