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월요일, 차에서 중요한 건?
아마도 타이어가 아닐까 싶다. 타이어 경고등을 해결하고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
하루를 준비하는 마음이 월말 이러 저러한 정리를 하며 일상을 돌아보니 좀 어수선한 지 그림도 어수선해지나 보다
대화
사회와 관계에 대한 순응
사회와 사람들은 충돌보다는 상대가 자신에게 순응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러함 속의 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문명화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과정을 보면 아기나 영유아, 어릴수록 주변이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 주변에 순응함 없이 행동을 하고 소리질러 울면서 주변에 순응을 강요하기도 한다
현대의 극장, 무대 위에서 연주되고, 공연되는 영화나 연극, 오페라,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숨소리 하나, 자연스런 기침조차도 조심스럽게 만들지만 사실 과거의 무대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세익스피어 시대의 극장에는 피트(feet), 즉 입석이라는 자리가 있어 관중들은 서서 무대를 보며 소리지르고 발을 굴렀다 한다. 순응보다는 무대 위의 공연을 함께 하면서 환호 또는 비난을 그 자리에서 보여주던 본능의 모습들을 무대 위에서만이 아닌 관객으로서도 함께하며 풀었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사회는 본능을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너, 각 개인들에게 적어도 밖으로는 잊게 요구를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대화?
과연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관 계속에서 실질적 내 안의 것에 대한 대화는 가능한 것일까? 교화, 순응의 대상으로 내 밖을 보며 하는 말은 이미 대화가 아닌 나 아닌 너에 대한 잘 못됨을 말하며 바뀜 요구하는 것은 아닐지
대화, 말이 입 밖으로는 줄어들고 내 안으로 더 쌓여가다 보니 생각만 많아지나 보다
이성을 가지지 않은 동물들의 대화는 사람들보다 더 진실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