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립, 아주 작고 가벼운 티끌. 나로부터 태어난 두 개의 다리와 나로부터 생겨난 두뇌로 지금의 세상을 만든 인간인 우리가 나를 정의하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우리가 정해놓은 단어처럼 아주 작고 가벼이 세상을 부유한다.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하고 아주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작고 작았던 내가 곧 거대한 우주의 시작이었음을.
약 138억 년 전, 우주는 폭발과 팽창으로 여념이 없었다. 모든 것이 에너지였던 그때 극도로 미세한 입자인 나와 또 다른 ‘나’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서로 충돌하고 합쳐지며 처음의 원자와 분자를 만들었고 아주 더딘 속도로 수억 년의 세월에 거쳐 새로운 별과 행성을 만들었다. 그렇게 태양계가 형성되었고 지구가 태어났다. 지구의 바닷속 미세한 유기 분자가 서로 결합하며 최초의 단세포 생명이 나타났고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서로 충돌하고 합쳐지며 진화를 이루면서 수십억 년 동안 점점 복잡한 생명체로 변화했다. 그 진화의 끝에 현재의 우리가 놓여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 DNA 속에는 아주 작고 가벼운 티끌에 불과했던 ‘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든 존재는 결국 ‘나’로부터 만들어진다. 그 작고 작은 티끌, 미립이었던 내가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세상과 우리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온 우주와 연결되어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시작이 된 나와, 나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우리인 모든 것들은 기억해야 한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고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비록 작은 존재일지라도 언제나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작은 미립이었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 온 우주를 만들었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산꼭대기 바위 위에 앉아 있다. 이 변함없을 진리를, 우리의 위대함을 내가 다시금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흙 한 줌, 물 한 방울 없는 척박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곳에 나와 같은 티끌들이 서서히 쌓이고 쌓인다. 우리는 아무 힘이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후~ 하고 불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켜켜이 쌓인 내 위로 꼭 우리만 한 씨앗이 싹을 틔운다. 바람과 비가 가져다준 작은 유기물과 섞이며 그 위에 자리 잡은 씨앗에 생명이 깃든다. 그 작은 존재는 커다란 바위틈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다.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을 찾아 몸을 키웠다. 작은 나무였다. 뿌리가 깊어질수록 바위에는 미세한 금이 생겼고, 어느 날은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위가 반으로 갈라졌다. 작은 먼지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먼지 하나가, 시간의 힘과 끊임없는 쌓임으로 거대한 바위를 쪼갰다.
미립, 아주 작고 가벼운 티끌. 미약했던 우리의 첫 시작을, 그러나 걸음걸음 끊임없이 이어지고 쌓여 온 나의 흔적을 마주한다. 우리는 그렇게나 커다란 존재였다. 나는, 우리는, 다시 가벼이 세상을 부유한다. 작고 작은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