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직 별다른 느낌은 안 드네요.
후회 없는 선택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아주 오래 고민했던 일이라 후회는 없을 겁니다.
23세기 초, 인간은 DNA 복구 기술을 개발하여 손상된 DNA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방식으로 수명 연장에 성공한다. 이 DNA 복구 기술은 인간의 노화 과정을 사실상 정지시키며 인간 삶의 유한성에 무한이라는 숫자를 부여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수 백여 년이 지난 현재, DNA 복구 기술이 보편화되어 사실상 이 수명 연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에게 그야말로 ’불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불멸을 누리는 시대에 혼자 소멸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혹시, 왜 유한한 삶을 선택하게 됐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저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두렵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불멸을 원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 건강한 육신, 재산 같은 것들이요. 삶에 죽음이 없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을 깨고 내 삶을 온전히 내 손안에 넣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게 불멸이라고 믿었고 남들과 똑같았죠.
하지만 100년, 200년, 3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쌓여가는 기억과 불멸의 삶 속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 나눴던 감정, 그리고 제가 믿어왔던 삶의 의미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희미해지다 결국에는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을 느꼈어요.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자극에 무뎌지는 삶이라니, 갈망했던 불멸로 인해 원하고 가졌던 모든 것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텅 빈 껍데기 같은 삶이라니. 그런 무한이 과연 인간에게 필요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불행보다 지난한 행복을 꿈꾸며 불멸의 삶을 누리고는 있지만 정작 얻는 것은 행복에도 불행에도 무뎌지는 삶뿐이던 걸요. 통제할 수 없는 죽음으로부터 도피해 얻은 그런 허무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불멸에 삶을 통째로 종속당하는 느리고 긴 고문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불멸로 인해 소멸을 선택하게 됐달까요?
인간은 삶이 무한하길 갈망하나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는 삶을 느끼거나 만끽할 수 없어요. 삶이란 그저 ’살아있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게 있는 거죠. 저는 인간이 불멸을 손에 넣을 기술은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불멸의 시간을 채워 넣을 영혼은 아직 갖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소멸을 원하는 이유예요. 본래 사람들은 누구나 해피 포에버보다 해피 엔딩을 원했잖아요. 소멸을 선택한 저는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있고자 하는 겁니다.